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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갈대밭 사이로 문학의 향기를 따라 걸어간 길, 그 끝에 자리한 순천 정채봉 문학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믿음을 나도 믿는데 나의 이 신앙은 동심이다.

흔히들 동심을 아이 마음으로만 말하나 나는 한걸음 나아가 영혼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심으로 우리는 악을 제어할 수 있으며, 죄에서 회귀할 수 있으며, 신의 의지에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영혼의 고향구현이 나의 작품세계의 기조이다.

 

-정채봉님의 <물에서 나온 새>의 작가의 말 중에서-

 

순천만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어디선가 문학의 향기가 솔~ 솔~ 날 것만 같아 자꾸 두리번거리며 걷게 되는 길..

그 길의 끝에 자리한 순천문학관의 정채봉관..

 

나의 신앙은 동심이라고 말씀하셨던...

정채봉 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2012년 1월 25일)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면,

어디선가 환한 미소 가득한 선생님이 여행자를 맞이해 줄 것만 같은..

 

초가집 지붕, 낮은 툇마루..

문학관을 한바퀴 둘러보고 저 툇마루에 앉아 발을 흔들거리며 한참을 놀다 왔답니다.

 

 

 

 

한낮의 태양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그림자 드리워진 너른 마당의 흙을 밟으며,

돌절구에도 눈길을 주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장독들에게도 눈길을 건네는 시간...

 

순천문학관은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과 소설가 김승옥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진 곳으로

순천만 생태공원에서 갈대기차를 타고 올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여행자의 생각으로는 갈대밭을 보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입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그의 철학이 여행자를 반겨줍니다.

 

어느 날 서적상을 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지요.

"솔직히 선생님의 책이 많이 팔리는데 저는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선생님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지요.

"시골 작은 웅덩이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물을 퍼낼 때 보면 흙탕물이 된 곳에서는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입을 내놓고 뻐끔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맑은 물이 흘러드는 곳으로 모인다. 그럴 때 삼태기나 족대로 고기를 떠 잡았는데 우리 사회가 지금 웅덩이의 흙탕물처럼 혼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고기들이 맑은 물 있는 데로 모이듯 사회가 탁하기 때문에 내 책을 찾는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사회가 흐려지면 흐려질 수록 내 저서는 더 많이 나가서 부자가 될 것 같은데 그것은 인류를 위해선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동화 속 내용 같은 세상이 이루어져서 내 책이 필요치 않은, 곧 내가 동화를 써서 팔 수 없어 망하게 되는 동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선생님의 책 <물에서 나온 새>의 서문중에서-

 

 

 

 

선생님의 배냇저고리..

60년의 세월을 넘어서 이곳에 걸린 그의 어린시절이로군요.

 

정채봉 선생님(1946-2001)은 이곳 순천시 해룡면 바닷가 신성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선생님은 고향에서 접한 나무, 바다, 학교, 꽃들을 동화에 옮겼습니다.

 

 

 

 

어머니가 스무살 젊은 나이에 별세하고

아버지 또한 일찍 일본으로 유학하여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짙은 외로움이 그의 유년 시절을 휘감았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래서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무와 풀, 새, 바다와 이야기 하고

스스로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는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랐습니다.

 

유년기의 외로웠던 환경이 오히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였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대신 자연을 관찰하고 벗할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채봉 선생님은 고향에 대해서

"사실 내가 쓰는 글의 많은 부분을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에 빚지고 있는 거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천문학관 정채봉관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손때묻은 그의 물건들..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정채봉 선생님은 1973년 '꽃다발'이란 작품으로 문단에 등단

대한민국문학상, 새싹문학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동국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사회에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동심과 사랑, 자연, 나눔 등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줬으며

사물을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과 생명을 대하는 겸손함을 글로 남긴채

지난 2001년 1월 짧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동화와 단행본...

 

선생님의 꽃다발, 종이 비행기, 제비꽃, 풀꽃, 하얀 사랑...

 

1973년 < 동아일보 > 신춘문예에 소설과 동화 두 부문에 응모했지만

소설에서는 낙선하고, 동화 <꽃다발>이 당선되어 동화를 쓰시기 시작한 선생님..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채봉 선생님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중에서-



 

 

김현숙 아동문학 평론가에 따르면 정채봉 문학의 특징은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점입니다.

아이의 동심을 통해 어른을 깨우치는 동화라 그 대상이 아이보다 어른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동화와 소설의 경계가 선명하던 시절, 벽을 허물며 '성인 동화'라는 새말을 만들었습니다.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일찍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맞부딪힌다.

그때마다 인생이 기우뚱하고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충격 앞에

어떤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충격을 조금씩 받아 들이면서 헤쳐 나간다.

여기 생사의 갈림길이 있을 것이다.

 

속이 찬 사람들은 크게 앓고 나면, 그 삶에 무게가 실리고 보다 겸허해진다.

그는 병상에서 그의 천주님에게 고향 바다와 같은 푸른 기도를 올린다.

태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바다를 저에게 허락하소서 라고,

바다의 그 단순성과 바다의 가슴을, 그리고 넘치지 않는 겸손과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항시 움직임으로써 썩지 않는 생명을 염원한다

 

-정채봉 선생님의 <눈을 감고 보는 길>에서 법정스님께서 쓰신 책머리에 중에서-

 

정채봉 선생님께서 투병 중에 쓰신 글들을 모은 책인  <눈을 감고 보는 길>..

그 글의 책머리에 법정스님의 글이 실려있어

정채봉 선생님과 법정스님의 인연을 짐작케 합니다.

 

 

 

 

초가지붕의 한옥,

정갈한 느낌의 전시관..

 

 

 

 

주민등록증, 여권, 명함..

연필, 펜, 쇠자, 그리고 손톱깎기까지..

 

사람은 가고, 그의 생애를 짐작케하는 물건들은 남아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는..

 

 

 

 

다이어리와 수첩, 작품노트..

 

 

 

 

라디오의 다이얼을 조정하는 딸아이한테
문득 아버지가 물었다.

"잡음 없는 음악을 들으려면 듣고자 하는
방송국의 주파수에 정확히 맞추어야겠지?"

"그럼요, 아버지."

"그럼 네 마음의 소리를 네가 들으려면
어떤 주파수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니?"

대답하지 못하는 딸아이한테 아버지가 말했다.

"숨쉬는 것이 때로는 천둥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진솔해야 한다.
진솔의 주파에 맞추면 너의 영상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번에는 딸아이가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면
어떤 주파수에 맞춰야 하지요?"

"그거야 동정의 주파지."

아버지가 설명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사정을 말하면
자기 경험 또한 끼어들려고 안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이 이야기할 때는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정채봉 선생님의 바람의 기별 중에서-

 

 

 

 

믿음,

어떤일이나 사실이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이에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꼭 지켜질 것이라는 생각,

우리 가족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순천문학관 정채봉관에서-

 

 

 

 

그리고 오세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정채봉 선생님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오세암>

 

오세암의 길손이에 관한 선생님의 글..

 

 

 

 

'동화를 쓴다는 사실에 행복하면서도 간혹 부끄러움을 느낀다.

행복하다는 것은 동화가 동심에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찾는 중에 젖게 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맑음과는 거리가 먼 이 세상살이가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게 한다'

 

오세암의 말머리에서-

 

< 오세암 > 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고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됐습니다.

 

 

 

 

앞을 못보는 누이 감이와 그 누이를 위해주고 챙겨주는 길손이 남매,

고아인 남매는 스님을 따라 절집으로 향해게 됩니다.

 

 

 

 

스님과 함께 살게 된 남매,

그리고 관음암으로 설정스님과 함께 마음의 눈을 뜨는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길손이..

 

어느 날 설정스님은 마을로 일을 보러 가시면서

길손이를 혼자 두고 내려갑니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길이 끊겨

스님은 올라오지 못하시고..

 

 

 

 

혼자 암자에 남겨진 길손이..

불화 속의 관세음보살님을 엄마라 부르며,

홀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달 스무날이 지나 스님과 감이가 암자에 올라왔을 때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차가운 길손의 주검이 아니었습니다.

 

환상적인 장면 속에 길손이는 관세음보살의 품에 안겨 있었으며

마침내 감이는 눈을 뜨게 되지요.

 

거지남매의 슬픈 유랑과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은, 설화적 세계로 이야기 되고 있는 그런 동화였지요.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의 세계는

아름답고 따뜻하고 그리고 슬프고, 때론 덧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네요.

 

유독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구석의 커다란 가방..

이 가방이 왜 눈길을 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평상시에도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해놓고 계시다

훌쩍 떠나신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듯...

 

 

 

 

정채봉 선생님의 전집은 2009년 샘터사에서 29권을 출간하였습니다.

에세이 '눈을 감고 보는 길'을 시작으로 장편 동화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에 이르기까지...

 

2001년, 간암으로 투병하던 정채봉 선생님이 작고할 당시 부인 김순희씨는 네 가지를 약속했다고 하지요.

당시 대학생이던 두 자녀를 잘 결혼시킬 것,

정채봉 동화를 전집으로 묶어낼 것,

정채봉 문학관을 짓고 정채봉 문학상을 만들 것.

 

10년 만에 그녀는 약속을 모두 지켰습니다.

장성한 아들딸은 결혼을 했고, 정씨 동화에서 말썽쟁이 캐릭터의 이름으로 자주 등장했던 딸 정리태씨는 동화작가가 되었습니다.

2009년 샘터사에서 정채봉 전집이 나왔고,

지난해 10월에는 순천문학관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상..

 

작년 11월, 정채봉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정채봉 선생의 후배 작가들로 이뤄진 '동화세상' 회원들이 스승을 기리는 문학상을 만들었습니다.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들어진 문학상이 만들어져 작년 11월 1회 정채봉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하늘나라 우체통이 문학관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승의 숨을 거두고 바람으로 찾아오는 그리운 사람들이

우표 대신 보내는 갈대를 바라보며

하늘에 계신 선생님에게 그리운 말 한줄 적어 부쳐봅니다.

 

 

 

 

“바다가 아스라이 여인의 인조비단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순천만에 가보세요.

갈대가 훌쩍 키를 넘고 있으니까요.

순천만, 송광사와 선암사, 낙안읍성, 주암호…. 순수한 동심이 있는 우리 고향 순천길이

그대의 발길에 위안을 주리라 믿습니다.

부디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아름다운 풍광 두르소서.”

 

눈을 감고 보는 길 중의 한구절로 여행자를 배웅해주시는군요.

 

 

 

 

문학관 바깥의 낮은 초가담장,

소쿠리, 망태가 걸린 벽, 그 사이의 작은 창문..

어쩐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풍경들을 마음에 올려놓습니다.

 

정채봉 문학관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순천 ic - 전라선 22번 국도- 남교 오거리 - 순천만 - 갈대기차나 도보로 10분- 정채봉 문학관

 

 

정채봉 문학관이 위치한 순천만의 풍경들을 보시려면 클릭해 보세요~

대한민국 명품 여행지, 순천만 와온 일몰 http://blog.daum.net/sunny38/11775571

 

연말 해넘이 여행, 여기 어때요? - 순천만 일몰 http://blog.daum.net/sunny38/11775253

 

하늘이 내린 정원-순천만 http://blog.daum.net/sunny38/1177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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