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역사, 금관가야..
2,0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는 김수로왕의 이야기가 있고, 금관가야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김해는 서기 42년 김수로왕에 의해 건국된 금관가야가
터를 잡았던 고장입니다.
금관가야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철의 제국, 태양의 제국으로 불리우기도 하였습니다.
금관가야는 전기 가야연맹을 주도해 나갔지만,
532년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역사 속에서 사라진 곳이지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찾아가며
여행자는 사실 조금 설레였습니다.
김훈님의 현의노래에서 읽었던 가야의 무덤들..
그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지요.
신라나 조선의 왕릉이 평지에 있는 것과 달리
산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는 가야의 무덤..
야트막한 언덕처럼 보이는 저곳이
김해 대성동 고분군입니다. (2011년 5월 29일)
대성동고분군 바로 앞에는 대성동 고분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나 당시 금관가야의 무덤이나 생활모습 등에
대해서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대성동 고분박물관은 따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분군이라고 하면 먼저 큰 봉분들이 연상되는데,
이곳은 그저 큰 언덕하나만 보일 뿐입니다.
언덕 위를 올라가야 고분이 보이려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여행자...
눈 앞에 보이는 큰 언덕은 바로 애꼬지 언덕..
왜꼬지 언덕이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이 언덕에는 금관가야의 수많은 무덤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무덤들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일단 올라가 보기로 하지요.
언덕 사이를 난 길을 따라 오릅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
의아한 생각이 드는군요.
봉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곳을 돌아보는 내내 여행자의 머리속을 맴돌던 생각이었습니다.
널찍한 터만 남은 무덤..
대성동고분군은 왜 애꼬지 언덕 하나가 전부일까요?
부여나 경주에 가면 높게 쌓아올린 봉분들로 이루어진 고분군들이 많은데..
이는 가야문화권 내에서도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이나 함안의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도 마찬가지기에
더욱더 특이해 보입니다.
이는 고분의 양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보시려면, 클릭해 보세요!
봉긋 솟은 왕릉. 그속에 숨쉬는 1500년 전 대가야의 역사-고령 지산동 고분 http://blog.daum.net/sunny38/11775048
함안의 도항리, 말산리 고분군을 보시려면,
봉긋 솟은 왕릉.그속에 숨쉬는 1500년전 아라가야의 역사 도항.말산리 고분 http://blog.daum.net/sunny38/11775151
이곳은 외면상으로는 큰 언덕뿐이지만
발굴된 바에 따르면
이곳엔 고분들이 6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하며
조사된 무덤만 총 136기나 됩니다.
이곳의 묘제, 즉 고분양식은 다양한 널무덤, 덧널무덤, 독무덤, 돌덧널무덤
그리고 굴식돌방무덤과 앞트임식돌방무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된 묘제는 덧널무덤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4기(1-4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구역으로
판갑옷, 재갈, 물미 등의 유물이 출토된 곳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대성동고분박물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에 가면 널무덤, 덧널무덤에 관한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 아파트로 둘러싸여 도시 속의 섬처럼 되어버린 고분입니다.
도심 속의 공원처럼 되어 있으니
어쩌면 찾아주는 이 없는 쓸쓸한 곳보다는
더 좋을련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덕 위에 군데군데 무덤들..
봉분이 없는 대신 이를 보도블럭이나 목재를 사용하여
유구의 테두리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널무덤은 나무로 된 관에 시신을 묻고 매장하는 것며
덧널무덤은 큰 널을 짜서 그속에 관을 넣어두거나
아니면 그대로 안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고고학에서는 주로 규모 등을 가지고 차이를 따진다고 하지요.
널무덤 다음에 조성된 것이 덧널무덤인데
대성동고분군에서는 총 46기가 있으며
이중에 대형 덧널무덤이 30기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언덕의 중심과 능선부에 위치하며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이르는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진은 2기(23,24호)의 무덤이 발굴조사된 곳으로
사신문양거울, 굽은 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곳입니다.
이렇게 많은 무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분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봉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무덤의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의 경우 봉분을 쌓긴 하지만,
그 이후의 무덤양식들에 비해서는 봉분을 낮게 쌓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 대성동고분군은 무덤을 중복되게 조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기존 무덤 위에 다시 무덤을 쓴다는 뜻이며
나중에 무덤을 쓸 때, 기존 무덤 일부를 파괴하기도 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되고
봉분이 뚜렷하지 않거나 흙이 깎아 내려지는 등의 변화 때문에
지금의 우리는 그냥 큰 언덕 하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조 무덤 위에 다시 자신의 무덤을 쓰는 일..
그 단적인 예를 노출전시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출전시관은 대성동고분군에서 발견된 무덤 중
29호분과 39호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겨 놓고
복원해 전시한 것입니다.
당시의 무덤 축조방식과 유물의 배치 모습을 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중 29호분은 3세기 후반의 왕묘로 보이며
39호분은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100년이라는 시대 차이가 나는데
29호분의 경우 청동솥이나 최초의 가야 도질토기 등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러한 무덤 간의 중복은 대성동고분군을 비롯한
금관가야 무덤축조방식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가야인들은 이 대성동고분군의 언덕을 중요시하게 여겼으며
이곳을 신성한 지역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늘이 좋았던 날..
아이는 연을 날리고..
가족나들이를 나온 이들은
환한 햇살을 즐기는 오후...
노출전시관을 지나, 해반천 부근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대성동 고분군과 해반천 사이에
50-60m 실물크기의 말과 기마병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가야를 상징하던 철의 전사들이
이시대에 부활한 것이로군요.
해반천을 따라 달리는 형태의 기마병들과 병사들..
최고무사, 일반무사, 판갑무사, 피갑무사 등이 줄지어 달리는군요^^
가야기마민족 상징상에 관한 안내판
기마 체험을 할 수 있게 해놓았군요.
이곳 대성동고분군은 3세기부터 5세기의
가야 왕족들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가야를 대표하는 고분으로
비록 봉분은 없지만, 그 속에 숨은 비밀은 가득한 곳이라고 하지요.
2,000년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
그 길로의 시작이 되는 곳..
김해대성동 고분군이었습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찾아가는 길
서김해 ic - 좌회전 후 직진 - 외동사거리 우회전 - 직진후 봉황교 지나 좌회전 - 대성동고분군
또는 동김해 ic - 국도 14호선 - 가락로 - 분성로 - 김해 도서관 지나 - 대성동 고분군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릉을 보시려면,
한국인의 10분의 1정도를 차지하는 김해 김씨의 시조가 묻힌 수로왕릉 http://blog.daum.net/sunny38/11775054
파사석탑으로 더 잘 알려진 부드럽고 단아한 수로왕비릉 http://blog.daum.net/sunny38/11775055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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