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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독서를 하면서 횟수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던 옛사람들-한국 가사문학관

 

 

 

이상하게 그 부근까지 가면서도 들르지 않게 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곳~ 담양에 위치한 한국 가사문학관이 제게 그런 곳입니다.

근처의 소쇄원을 몇 번이나 들르고, 식영정을 들렀을 때도 찾지 않고 지나치던 곳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와 손을 잡고, 산책하듯이 이곳 근처의 몇 군데를 둘러봅니다.(2010년 9월 24일)

 

가사문학관은을 들어서면, 소등을 탄 피리부는 소년의 모습이 먼저 눈에 띕니다.

그뒤로 가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구요.

 

 

 

 

가사문학관에서 가장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을 맨 위에 올려봅니다.

송강 정철 선생의 친필을 모은 책으로 송강선조유필입니다.

56세 때인 1591년 강계로 유배되어 가시울타리 내에서 살던 귀양살이 중에

독서하면서 그 횟수를 동그라미로 표시한 부분들입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 수많은 가사를 남긴 선생께서 독서를 하면서

그 횟수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다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가사문학관 앞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노니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구요.

잉어는 먹이를 주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저리 떼지어 몰려다닙니다.

 

 

 

 

가을 잠자리의 완벽한 포~즈...

긴 꼬리는 뒤로 들어올리며, 아름다운 자세를 취해 줍니다. ㅎ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

여기저기서 잠자리들이 '나도 찍어봐'하고 절 부르니 말입니다.

 

 

 

 

문학관 마당에서 만난 아름다운 나비~

ㅎ 나비는 아니지만, 마치 나비처럼 보이는 꽃의 모양에 제가 나비라고 불러봅니다.

맹나이언님께서 홍접초라고 이름을 가르쳐 주시는 군요.

다음에 만날 때까지 기억하고 있어야 할터인데... ㅎ

 

 

 

 

여기는 흰색의 나비꽃입니다.

이건 백접초라고 한다는군요.

 

 

 

 

가사문학관 입구에서 바라보면, 정자와 연못.. 물레방아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물레방아..

무등타는 피리부는 소년...

가사 문학에 어울리는 것들이네요.

 

 

 

 

물레방아 옆으로 터널이 있는데,

위쪽의 덩쿨 식물들은 이제 시들어가고 있고,

아래는 차꽃이 피었습니다.

차꽃이 이렇게 생겼군요.

함께 간 언니의 닉네임이 차꽃인데...

자신의 꽃이라고 알려줍니다.

수줍고 고운 꽃입니다.

 

 

 

 

차꽃이 피려고 꽃봉오리들 준비 중이네요.

 

 

 

 

한켠에는 찻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직 점심 전이라...

점심을 먹었다면, 차 한잔 하여도 좋을 듯 한데...

 

 

 

 

찻집의 넓은 유리와 문창살...

덤으로 제 모습까지...

 

 

 

 

담쟁이 덩쿨로 봐서는 아직 여름이 한창인 듯 합니다. ㅎ

 

 

 

 

이제 가사문학관 내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먼저 가사문학이란?

 

가사문학관의 홈페이지에 내려진 정의를 여기에 옮겨 적어보자면..

가사는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잡아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로 율문 (律文)이면서도

서정, 서사, 교술의 다양한 성격을 지닌 문학 장르입니다.

형식상 4음보(3·4조)의 연속체인 율문이며,

내용상 수필적 산문인 가사는 산문과 율문의 중간적 형태로 조선조의 대표적인 문학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관 입구를 들어서면 송순 선생의 면앙정가가 크게 걸려 있습니다.

 

조선 전기 가사의 주 담당층은 송순·정철·박인로 등으로 대표되는 양반 사대부 계층입니다.

그들은 생활의 체험과 흥취 및 신념을 노래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강호(江湖) 가사'이지요.

이 작품들에는 혼탁한 세상의 고단함과 갈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에 묻혀 심성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유학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은 자연 (우주적 질서)과 자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높은 정조를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서정적 정조는 이 시기 가사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 으로는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허난설헌의 '규원가' 등이 있습니다.

 

 

 

 

2층에는 1 전시실과 2 전시실이 위치해 있으며, 1층에는 3전시실이 위치해 있습니다.

 

조선 후기 가사는 박인로, 김인겸, 정학유 등과 평민 및 부녀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가사 창작에 평민과 부녀자층이 등장한 것은 시조에서 작자층이 확대되었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음풍농월하던 서정 중심에서 벗어 나 실생활에서 제재를 구하고

서사적, 교술적 내용이 가미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형식적으로도 장형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박인로의 '태평사', '선상탄', '누항사', 김인겸의 기행가사인 '일동장유가', 정학유의 '농가월령 가' 등이 있으며,

평민가사로는 '우부가(愚夫歌)', '용부가(傭婦歌)' 등이 있고, 내방 가사로는 '규중행실가', '원한가' 등이 있습니다.

 

 

개화기에 제작, 발표된 한국 시가의 한 양식을 개화가사라 합니다.

그 내용에는 개항과 함께 한국사회의 한 과제가 된 문명개화와 진보·발전·부국강병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면에서 보면 고전 시가의 한 양식인 가사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습니다.

즉,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4·4조 또는 3·4조의 자수율에 의거합니다.

그리고 그 분량이 상당하여 긴 연형체시가입니다.

시기적으로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창가나 신체시 보다 앞서 제작, 발표되었구요.

따라서, 개화가사는 한국시가사상 최초로 형성된 근대적 양식입니다.

다만,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그 선구성 때문에 과도기적인 단면도 강하게 지닙니다.

개화가사의 어투는 대게 직설적입니다.

이것은 근대시가 정서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는 공리에 어긋났습니다.

개화가사의 또 다른 과도기성은 작자의 비전문성으로도 나타납니다.

 

- 한국가사문학관의 홈페이지에서 가사문학 발생에 관한 글을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정철 선생의 옥배와 은배

 

임금이 하사한 옥과 은으로 만든 술잔입니다.

 

 

 

 

 그리고 송순 선생의 면앙정가와 교지, 시호장(임금이 공이 많은 신하에게 사후에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한 칭호 증서) 등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 반대편에 위치한 2전시실

 

담양의 아름다운 정자 소쇄원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대표 가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송순 선생의 면앙정가

 

무등산 한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떼쳐 와 제월봉이 되여거날 무변 대야의 므삼 짐쟉 하노라.

닐곱 구배 함대 움쳐 므득므득 버럿난 닷.

가온대 구배난 굼긔 든 늘근 뇽이 선잠을 갓 깨야 머리랄 언쳐시니...

 

- 무든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무등산을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는 넓은 들에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일곱 굼이가 한데 움치리어 우뚝우뚝 벌여 놓은 듯,

그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혀 놓은 듯 하여....

 

 

 

 

송강 정철 선생의 사미인곡

 

1588년 선조 21년에 정철선생이 지은 가사로 전체 126구입니다.

송강 정철 선생이 50세 되던 해에 당파싸움으로 인해,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창편에 은거할 때 쓴 가사입니다.

이때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절과 연군의 정을 고백한 작품입니다.

 

 

 

 

송강 정철 선생의 속미인곡

 

사미인곡에서 못다한 정을 다시 펼쳐낸 것으로 사미인곡보다 언어의 구사와 시적 의미의 간절함이 더욱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임금을 그리는 연군의 충정을 임에게서 버림받은 한 여인에 비유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총 96구로 되어 있습니다.

 

 

 

 

성산은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지곡리에 있는 지명입니다.

정철 선생이 이곳에 살 때 처외재당숙인 김성원을 위하여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문인 김성원이 세운 서하당, 식영정을 중심으로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경치와 김성원의 풍류를 예찬한 노래입니다.

 

 

엇던 디날 손이 성산의 머믈며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듯소.

인생 세간의 됴흔 일 하건마난

엇디한 강산을 가디록 나이 너겨

적막 산중의 들고 아니 나시나고...

 

->

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말을 들어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거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만한 산중에 들어가고 아니 나오시는가....

 

 

 

 

송강 정철 선생의 또 다른 대표작 관동별곡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 지역의 산수를 두루 돌아보며 느낀 감흥과 포부를 엮은 기행가사입니다.

정철 선생의 가사 중에 가장 긴 작품입니다.

총 290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친정길

지은이- 소고당 고단

 

조선 후기의 부녀자가 쓴 가사입니다.

 

친정 큰댁 오라버니의 병문안을 다녀온 사연과 마을 주변의 자연 경색과

규수 시절의 친가 어른 동기간의 옛정을 회고하는 간절한 사연들이 어제 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조대 쌍송

 

조대쌍송은 임억령 등이 지은 한시 식영정 20영, 또는 정철의 가사인 성산별곡에 나오는 명소의 한 경관입니다.

환벽당 아래에 흐르는 창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날 환벽당도 다녀왔지요.

다음 번에 올려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1층의 제 3전시실

 

임억령(1496-1568) 선생의 친필 유묵과 옥배, 석천집, 식영정 20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소쇄처사로 불리웠던 양산보 선생에 대한 글과

오른편의 소쇄원도

소쇄원도는 1755년에 그려진 소쇄원의 모습으로 소쇄원사실(소쇄원 경영에 대한 사실을 양산보의 후손들이 쓴 글)에 실려있습니다.

 

 

 

 

담양군 남면에 위치한 소쇄원 내의 제월당 현판으로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전시실에는 많은 기록물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올려 보았습니다.

 

가사문학관 가까이에는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이 있어

호남 사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으며,

이는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되었다지요.

 

그리하여 담양에는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 충효가, 유도가의 경술가, 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 초당춘수곡, 사친곡, 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 민농가 및 작자 미상의 효자가가 있습니다.

 

한국 가사 문학관 찾아 가는 길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번지

 

광주- 각화동- 고서 사거리- 광주호 방면- 가사 문학관

또는 호남고속도로 창평 IC - 고서 사거리 - 광주호 방면 - 가사 문학관

 

가사 문학관과 관련된 제 블로그의 다른 글들 보기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 http://blog.daum.net/sunny38/11775004

 

빽빽이 들어찬 소나무 숲이 좋은 가사문학의 산실- 송강정  http://blog.daum.net/sunny38/11775003

 

가사문학의 최고 백미인 면앙정가를 지은 곳- 면앙정 http://blog.daum.net/sunny38/11775002

 

단아한 한국의 정원- 소쇄원  http://blog.daum.net/sunny38/1008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