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정리하다보니, 2009년 4월 11일에 다녀온 여주의 고달사지 사진이 있어 몇 장 올려봅니다.
해질녘..
넓은 폐사지 절터는 황량하기까지 합니다.
혜목산 기슭의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합니다.
이 절은 고려 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 가운데 하나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은 중요한 사찰이었습니다.
975년 세워진 원종대사 비문에 의하면 당시에는 고달원 또는 고달선원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1530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 고달사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번창하였으나
1799년 편찬된 범우고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1998년부터 시작한 발굴 조사는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절터가 아주 넓습니다.
상당한 규모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고달사터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대좌(보물 8호),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6호)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원종대사 혜진탑(보물7호),
중요 문화재인 고달사지 부도(국보 4호)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물 282호인 쌍사자석등이 있는데, 이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석조 유물들의 규모를 보아도 찬란했던 역사의 현장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란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다고 하지요.
불사를 끝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었으니, 고달사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석불대좌 (보물 8호)
이 석불좌는 불상은 없어진 채 대좌만 덩그렇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고 조각솜씨가 명쾌한 4각대좌의 수작입니다.
이 대좌는 장방형의 석재를 상.중.하대 등 3중으로 겹쳐놓은 이른바 방형대좌입니다.
상대는 양련을 시원하고 뚜렷하게 조각했고, 중대는 4면에 모두 하나의 큼직한 안상을 음각했는데 솜씨가 명쾌하며
하대는 상대와 같은 수법의 연꽃을 복련으로 새기고 그 아래로 안상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고려 초기 역작의 석조대좌라 할 수 있습니다.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6호)
이 귀부와 이수는 <혜목산고달선원 국사원종대사지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석 위에 얹혔던 이수입니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신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 근정전 서쪽 화랑에 진열되어 있답니다.
귀부는 거대한 단일석으로 조성되고 6각 귀갑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네 다리와 손톱 끝의 조형은 사실적입니다,
이수는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상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보주가 꽂혔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귀부와 이수의 옆 모습
거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0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여전히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조금 위쪽에 귀부의 일부분이 아닌가 싶은 몸체가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손톱 끝의 조형이 눈에 띄입니다.
폐사지를 지나 조금 위쪽 산길로 오르면,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보물 7호)를 볼 수 있습니다.
원종대사(869-958)의 부도인데, 원종대사 탑비의 비문에 의하면 97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팔각원당형 부도로 높이 2,5m 입니다.
이 부도는 4장의 돌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지대석과 위에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이 놓여 있습니다.
하대석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대석에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린 거북을 중심으로 네마리의 용이 있는데 몸통사이에는 구름 문양을 가득 새겨 넣었습니다.
상대석의 아래쪽에도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윗쪽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한 1단의 받침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탑신부의 각면에는 자물쇠 문양과 사천왕상이 교대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지붕돌의 끝에는 꽃무늬(귀꽃)가 크게 조각되어 있고 상륜부에는 꽃무늬가 조각된 복발 위에 작은 보개와 보주가 놓여 있습니다.
중대석의 모습
상대석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달사지 부도탑(국보 4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팔각원당형의 고달사지 부도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섬세하고 화려한 고려시대의 부도 양식을 보여줍니다.
이 부도의 하대석에는 팔각의 각 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중대석에는 거북 용 구름이 조각되어 있는데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웅장하여 이 부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석에는 연촉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몸돌에는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우주)이 새겨져 있으며 그 사이마다 자물쇠 문양과 사천왕상, 영창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어 졌으며 추녀 끝에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복발과 보개가 올려져 있습니다.
이 고달사지 부도는 전체적인 조각수범으로 보아 같은 절터에 남아 있는 원종대사 혜진탑(977년 건립 추정)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상- 원형이나 장방형의 곡선을 새겨서 우묵하게 파낸 조각의 일종
상대석의 모습
중대석의 역동적인 모습
고달사지 부도를 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1000년 여의 세월을 이기고 이곳에 서 있는 이 석조물들은
얼마만한 세월들을 다시 이곳에 홀로 서 있을련지요?
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느낌..
생생한 아름다움 때문이겠지요?
고달사지 찾아 가는 길
주소 : 경기도 여주군 복내면 상교리 47-1
여주읍 42번 국도 이용 원주방면 4km 진행 - 331번 지방도 양동(북내) 방면 7km, 상교리 부락 진입로 좌회전 3km 거리 - 고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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