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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상남도

봉긋 솟은 왕릉.그속에 숨쉬는 1500년전 아라가야의 역사 도항.말산리 고분

 

 

 

왕들의 상여는 능선 위로 올라갔다.

늙어서 죽은 왕들의 장례 행렬은 길고도 느렸다.

강 건너편 언덕을 넘어온 만자의 대열은 들판을 구불구불 건너와 산 위로 향했다.

 

김훈의 현의 노래 첫 구절입니다.

이처럼 가야의 무덤은 능선 위로 올라갔습니다.

신라의 무덤들이나 조선의 왕릉이  평지에 있는 것과 달리, 가야의 무덤은 이처럼 산의 능선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라가야가 위치했던 함안을 찾아갑니다.(2010년 9월 10일)

 

함안박물관의 고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항.말산리 고분군의 모습입니다.

 

 

 

 

함안의 가야는 아라가야라고 불리웁니다.

아라가야를 포함해 성산가야(성주), 금관가야(김해), 소가야(고성), 대가야(고령), 비화가야(창녕)를 6가야라고 하였습니다.

아라가야는 광개토왕비와 일본사기에 기록될 정도로 일본과의 교류를 주도하며 세력을 떨쳤던 왕국이지만, 지금은 세월 속에 묻혀진 왕국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왕들은 당시의 화려했던 아라가야의 기억을 가지고, 100여기의 고분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도항.말산리 고분군은 함안 박물관 뒤에 위치해 있습니다.

함안 박물관이 이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들은 전시해 놓은 곳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함안 박물관의 뒤편으로 가면 고분군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맨처음 볼 수 있는 8호분...

 

지난 번에는 대가야인 고령의 지산동 고분을 소개해드렸었지요.

그때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가야의 왕릉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만 남아 있습니다.

ㅇㅇ호분..

이렇게 말입니다.

1500여년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탓입니다.

 

 

 

 

고분 가에 야생화는 지천으로 피어, 무심한 세월과 상관없이 늘 이곳을 지켜주었을 테지요.

 

 

 

 

아라가야의 고분들을 제대로 둘러보기로 합니다.

산 위로 향하는 길..

숲속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길 가의 나무들에게도 눈길 한번 주고..

파아란 하늘에도 눈길 주며 오르는 길..

 

 

 

 

5호분, 6호분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고분 뒤로 함안박물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함안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 유물까지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고대 안라국(아라가야)과 관련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계단을 올라갑니다.

왼쪽은 1-3호분, 오른편은 9-37호분으로 가는 길..

먼저 9-37호분 쪽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갈림길에 위치한 4호분의 모습입니다.

 

함안박물관에서 받은 소개 책자에는 안라국이란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안라국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하지요.

안라국이란 고대 함안지역에 존재했던 나라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라가야로 부르고 있지만, 이는 가야시대 당시의 이름이 아니고 후대에 부쳐진 이름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이는 안야국은 안라국의 소국단계의 이름입니다.

안라국의 형성 시기는 기원전 3세기 대까지 소급해 볼 수 있습니다.

포상팔국전쟁,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 과정을 잘 극복하면서 정치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전성기 때의 권역은 지금의 함안지역 뿐만이 아니라, 인근 마산의 진동만과 현동지역, 의령과 진주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561년 무렵 신라에 복속되었습니다.

 

 

 

 

9호분의 모습

 

 

 

 

나무데크를 따라 걷습니다.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남과 동은 700m 높이의 산으로 둘러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안라군(아라가야)의 중심지였던 가야읍에 위치하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고분의 대둡분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600m의 주 능선과 서쪽으로 뻗은 여덟 갈래의 능선에 분포하고 잇습니다.

안라국 왕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기의 중소형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시기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제 34호분은 봉토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최대 규모의 고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고분군 북쪽 끝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갑옷이 출토되었고

사람의 순장 인골이 확인된 제 8호분의 조사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아라가야의 성립, 발전, 멸망의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요.

 

현재는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끝 말자의 말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산은 말이산으로 불렸었던 산입니다.

말이산(마리산)은 머리산이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안라국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능선에서 바라본 함안의 모습, 가야읍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니 가야의 모습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왕들은 이곳에 묻혀서 가야의 멸망을 지켜보았을 테지요?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의 평야와 산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고령 사람들이 대가야의 고분들을 품어 안고 살아왔다면, 이곳 함안 사람들도 아라가야의 고분들을 품어 안고 살아온 셈입니다.

함안 읍내가 이렇게 지척이니 말입니다.  

 

 

 

고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갑니다.

무더운 아침..

아무도 없는 고분을 혼자 걷습니다.

고분 속의 왕들이 혹여 잊혀진 안라국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걷습니다.

 

 

 

 

 

 

 

 

18호분 정도를 지나면 거의 길도 풀에 가려지기 시작하고..

고분도 풀이 무성합니다.

여름인 탓이겠지요?

풀을 깎고나면 금방 다시 자라는 계절이니 말입니다.

능선을 따라 아래로 올랐다, 다시 위로 오르고..

나중에는 풀에 가려서 고분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잊혀진 가야의 역사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처음의 갈림길까지 돌아왔습니다.

1-4호분까지 보기 위함입니다.

2,3호분 쪽에서 바라본 4호분의 모습입니다.

 

 

 

 

 2호분 3호분의 모습..

이 뒤에 1호분이 있다는데,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풀이 너무 무성한 탓입니다.

그만큼 찾는 이가 없는 걸까요?

 

 

 

 

다시 4호분..

4호분 앞에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3.1운동 탑이 서 있습니다.

1919년 3월 19일, 함안 장날에 3000여 군중이 모여 3.1운동을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세웠다는 표지판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탑입니다.

 

 

 

 

말산리 고분 4기와 도항리 고분 3기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직경 15m 내외 봉토 높이 4m 내외의 비교적 대형고분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도굴되었다고 합니다.

 

 

 

 

함안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나서 (함안 박물관은 다음편에 올리도록 하지요)

고분 전망대에 서서 바라본 도항, 말산리 고분들..

 

 

 

 

끊임없이 흐르는 구름들 아래 고분은 누워 있습니다.

이런 하늘을 늘 사랑하는 저는 또 사진찍기 놀이를 합니다.

 

 

 

 

시인 이은상씨는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곳 함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여기는 아라가야의 옛 땅. 민족의 얼이 서린 곳...' 리라며 시를 읊었다고 하지요.

 

 

 

 

고분 주변의 마을에서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하늘은 푸르러만 가는 가을입니다.

 

 

 

 

고분의 안내도를 올려봅니다.

주능선의 고지대에는 이렇게 40여기의 왕들의 무덤(추정)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중소규모의 무덤들이 보입니다.

거의 1000여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습니다.

 

 

 

함안 도항. 말산리 고분군 찾아 가는 길

 

주소: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768-1 (함안 박물관의 주소입니다)

 

남해 고속도로 함안 ic 에서 가야읍으로 직진- 함안 방면국도 79호선을 타고 함안 군청쪽으로 - 함안 박물관 이정표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