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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능소화 핀 골목 골목이 아름다운 하회마을

 

 

하회마을이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열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하지요.

오래만에 다시 찾은 하회마을..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마을 안에 자리하던 대부분의 가게들이 바깥쪽으로 나가고, 마을은 훨씬 정갈해지고, 산뜻한 느낌입니다.

 

능소화 핀 골목을 따라 걸으며, 찬찬히 둘러보는 시간..

토요일인데도, 마을은 고요하고 차분하기만 합니다.(2010년 9월 4일)

 

 

 

 

무더운 여름 뙤약볕에 속살을 채웠을 벼들이 이제 막 고개 숙이기 시작합니다.

그 뒤로 고택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

 

 

 

 

전에는 보지 못한 곳입니다.

주차장이 바깥쪽으로 나오고, 그 뒤로 하회장터가 생겼습니다.

안동의 대표적인 먹거리들..

간고등어 정식, 헛제사밥, 안동찜닭 등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하회마을 안쪽에 하동고택에 자리하고 있던 집인가봅니다.

장터 안의 식당들도 이렇게 기와집이나 초가집으로 하여, 옛정취를 살려 놓았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면, 하회장터를 지나, 매표소에 이릅니다.

매표소에서 하회마을 안내소까지는 1km정도(?)  강변을 따라 오솔길이 있어 걸어갈 수도 있고, 입구에서 500원(성인기준)을 내고 버스를 탈 수도 있습니다.

이날 날이 너무 무더운 관계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버스는 타자마자 내려야 합니다.

이제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으니,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안내소를 막 지나 하회마을 입구 쪽으로 가는데, 하회탈들을 장승처럼 세워 놓은 곳이 눈에 띕니다.

하회탈의 대표격인 각시탈과 하회탈의 모습

 

 

 

 

2단 하회탈~

웃는 모습이 같은 듯 하면서도 약간 다릅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게 조각되어 있는 하회탈의 모습도 독특하지요?

 

 

 

 

하회탈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다양한 모습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개 숙이는 벼 너머로 하회마을의 입구가 보입니다.

 

 

 

 

가는 길에는 은행나무가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구요.

가을에 벼는 노랗게 익어가고, 은행나무 노랗게 물드는 계절이면, 참 아름답겠지요.

하지만, 이 푸르름도 좋습니다.

눈이 부시지 않습니까?

 

 

 

 

논 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도 인사를 건네봅니다.

안녕~

 

 

 

 

 

 

 

 

하회마을 입구에 자리한 고택입니다.

 

이제 하회마을에 대한 소개를 해보아야겠지요?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가서 하회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아시지요?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현화부수형으로 일컬어지면,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말해졌지요.

이곳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기와집(와가)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 잘 보존 된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마을 동쪽에는 271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가지 뻗어 있으며 수령이 6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중심부에 해당합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또한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부락입니다.

구한말까지는 35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 호가 살고 있습니다.

마을 내에는 총 127가옥이 있으며 437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7개 가옥 중 12개 가옥이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능소화 핀 담장에 이끌려 골목을 들어서 보지만, 문은 닫혀 있습니다.

개방 된 곳도 있고, 닫혀 있는 곳도 있고..

 

 

 

 

초가집들이 모여 있어 가보니, 민박을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하룻밤 묵어 가는 일도 좋을 듯 합니다.

먼저 소개해 드린 옥연정사에서도 묵어 가도 좋을 듯 하구요.

 

 

 

 

탁자 위의 파라솔 대신에 짚으로 만든 지붕, 하회탈을 새겨 놓은 기둥들..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이 집 마당에는 민속주인 안동 소주에 대한 설명과 제조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안동소주는 증류식 소주로 45도의 도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 이후에 가양주로 계승되어 왔으며, 안동소주의 술 담그기 전통비법을 전승하여온 경북무형문화재 제 12호 기능 보유자인 조옥화여사가 빚은 술이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증류식 소주로서 장기관 보관이 가능하며 오래 지날수록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제조방법은

누룩만들기, 고두밥 만들기, 전술 만드는 법, 소주 내리는 법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았습니다.

자세한 방법은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어려서 집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던 작은 하회탈을 모아 놓은 액자..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쉽지요?

 

 

 

 

배롱나무 핀 골목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며..

담장과 정원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습니다.

 

 

 

하회마을을 둘러보는 길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기와집 담장 너머나, 초가집 담장 너머로,

때로는 감나무가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배롱나무 환하게 웃어주기도 하고..

능소화 활짝 피어 반겨주기도 하고...

골목 담장 아래 맨드라미 길게 늘어서 보기도 하는 그런 정다운 길입니다.

 

 

 

 

이날 폭염 주의보가 내렸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햇볕 아래 서서 돌아다니다보니, 체감 온도는 40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날 물을 엄청 마셨다는...

 

 

 

 

골목길을 따라 돌아 돌아서..

 

 

 

 

하동고택입니다.

처음 입구의 장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집은 류교목(1810-1874년)이 현종 2년 1836년에 지었으며, 하회마을 안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하동고택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살짝 들여다 본 하동고택

 

 

 

 

담 너머로 하동고택을 담아 봅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남녀를 구별하는 유교윤리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와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를 구별하여 집을 짓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집은 'ㄷ'자 모양의 안채와 서쪽으로 꺾여 나오게 지은 사랑채가 이어져 '弓'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따로 떨어진 대문간채가 본채와 달리 초가로 지어져 소박하고 졍겨운 모습입니다.

 

사실 이 사진으로는  위의 설명한 내용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하동고택 안내문에 이렇게 적혀 있어 옮겨 적어 봅니다.

 

 

 

 

능소화 붉게 물든 담장을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가 봅니다.

 

 

 

 

 

 

 

 

오늘 여행은 골목길 순례라고 이름 붙여 봅니다.

흙담은 흙담대로 소박한 멋이 있고,

돌담은 돌담대로 정겨운 맛이 있습니다.

 

 

 

 

 

 초가의 흙담과 고택의 돌담이 맞붙은 길을 따라 들어서면...

 

 

 

 

남촌에서 봐야할 염행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염행당은 보수 수리중입니다.

입구의 안내판을 여기 옮겨 적어 보는 걸로 대신합니다.

 

염행당은 류치목 (1771-1836년)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입니다.

처음에는 단촐하게 지었는데, 그의 중손자인 류영우(1850-1934)가 크게 확장한 것으로 전해 집니다.

1954년에 불이 나서 안채, 사랑채와 후대에 지은 작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대문채와 별당, 사당 만이 남아 있습니다.

별당채와 사당 사이의 흙돌담에 기와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넣어 고아한 정취를 풍깁니다.

 

 

 

 

염행당 앞쪽으로는 초가지붕과 토담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토담 너머 초가를 살짝 들여다 보기도 하고..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는 흔적들이 가득한 집입니다.

장독대.. 텃밭..

 

 

 

 

하회마을은 흔히 살아있는 고(古) 건축 박물관이라고 부르지요.

조선시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옛 모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고택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와집의 대부분은 풍산 류씨의 고택들입니다.

원래 허씨들이 모여 살았다가 고려시대에는 안씨들의 집성촌이었으나,

조선시대 초기 공조전서 류종혜가 입향한 뒤 약 600여 년간 풍산 류씨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회마을 주민 중 67%인 125세대가 풍산 류씨라고 합니다.

 

 

 

 

맨드라미 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삼신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있습니다.

류종혜가 입항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수령이 600년이 넘는 나무이며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당으로도 불리며, 화산 중턱의 상당 서낭당, 중당국사당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룹니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년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그 다음날 아침에 여기서 제를 올립니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됩니다.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의 엄청난 둘레

그 둘레로 사람들은 소망을 적은 쪽지를 적어 매달아 놓았습니다.

 

 

 

 

삼신당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돌담 사이로 고택도 보이고...

 

 

 

초가 지붕도 보이고...

 

 

 

 

종가에는 보이지 않는 유교의 서열이 존재한다고 하지요.

작은 아들은 종가보다 더 큰집을 지을 수도 없고, 가족들은 수많은 제사에 꼭 참석한다고 하지요.

보이지 않는 문중 문화 또한 이곳 하회마을의 유산이라고 합니다.

 

 

 

 작천 고택

 

이 건물이 지어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두채였으나 1934년에 대홍수로 문간채가 쓸려나가고 지금음 'ㅡ'자형의 안채만 남아 있습니다.

작천고택이라는 이름은 류도관(1823-1894)의 택호에서 따온 것입니다.

 

 

 

 

담장 너머로 작천고택을 살포시 담아 봅니다.

담장의 기와들에서 세월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강변쪽으로 향합니다.

하회마을의 고택 중에서 주일재, 양진당, 충효당은 따로 소개를 하도록 하지요.

마을의 오래된 고목..

번개를 맞았을까요? 

 

 

 

 

마을 쪽을 돌아보니 초록빛과 푸른 빛 사이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네도 타고, 투호도 하고..

체험의 공간^^

 

 

 

 

낙동강변의 만송정 솔숲으로 향합니다.

 

 

 

무더위에 지친 몸을 잠시 쉬어가는 곳..

만송정 솔숲에 앉아 바람 소리, 강물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하회마을 찾아 가는 길

 

주소: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257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나와 34번 국도와 916번 지방도를 타고 하회삼거리까지 갑니다.

하회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