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터키 여행(Turkey)

터키 최대의 유적지, 에페스1-음악당이던 오데온, 샘, 신전,욕장-터키 43

 

 

 

셀축 남쪽에 위치한 고대 로마의 도시 유적.. 에페스..

터키 전역을 통틀어 양과 규모에서 비할 데 없는 최고의 유적지라 칭해지는 곳입니다.

 

그만큼 에페스에서는 많은 유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데온, 도미티아누스 신전, 헤라클레스 문, 폴리오 샘을 한데 묶어 보았으며,

하드리아누스 신전, 공중 화장실  트리야누스 샘을 함께,

그리고 세계 3대 도서관 중의 하나인 셀수스 도서관을 하나로,

원형 대극장을 또 하나로,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과 아고라를 한데 묶어 올려보려 합니다.

 

음악당이었던 오데온의 모습입니다. (2010년 7월 3일)

 

 

 

 

에페스 유적을 관람하는 방법은 두가지

언덕 아래쪽인 북문에서 시작하여 언덕 위인 남문까지 올라가면서 보는 것과 반대로 남문에서 시작하여 북문으로 내려오며 관람하는 법..

두번 째인 남문에서 시작하여 북문으로 내려가며 관람을 하였습니다.

 

남문에 내려서면 맨 처음 볼 수 있는 안내판

삼성에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왕이면 한글 안내판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긴하지만..

 

 

 

 

남문 매표소 바로 앞에 위치한 바리우스 욕장의 모습입니다.

1세기 경에 건립된 목욕탕으로 내부에 냉탕, 온탕, 미온탕, 탈의실, 사우나 등의 시설과 공중화장실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욕장은 하이퍼코스트라는 난방 시스템을 갖추었었다는데, 한국의 온돌과 비슷한 형태라고 합니다.

1세기 경의 목욕탕이 현대의 목욕탕과 별 차이가 없었던 걸로 보아

로마인들의 목욕문화가 얼마나 발달했었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욕탕 앞쪽으로는 황토관들이 길게 연결된 수로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데 물은 필수적인 것!

도시 곳곳에 건설되었을 수로

 

 

 

 

길 한쪽으로는 발굴된 붉은 색 관들이 쌓여 있습니다.

에페스 유적은 아직도 현재 발굴 중이라 주변에 유물이 그냥 방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데온의 모습과 바실리카(시 청사에서 바리우스 욕장까지 뻗어 있는 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에페스에는 아고라가 두 곳이 있는데, 남문 쪽에는 위층 아고라가 있고, 북문 쪽에는 상업용 아고라가 있습니다.

그중 위층 아고라의 일부

건물의 기둥 일부가 남아 있으며, 바닥에 묻힌 수로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쯤에서 에페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아야겠지요?

 

에페스는 B.C 2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고대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에게해의 중심도시였습니다.

B.C 11세기 경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했으며, B.C 5세기에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알렉산더 대왕과 그 부하장수인 리시마쿠스가 차례로 에페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에페스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로마시대, 아우구스투스 황제때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이 되었고,

당시 500여 개에 달하던 로마 소아시아 속주의 수도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무려 25만 명이었다고 하니 아시아 최고의 도시라고 할 만 하였습니다.

번영을 구가하던 에페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자연~

7세기 무렵 강에서 유입되는 토사가 바다를 메우면서 항구도시의 기능을 잃자 도시는 급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아야술룩 언덕(현재의 셀축)으로 도시가 옮겨졌습니다.

1000년에 달하는 고대 도시의 영화가 막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바실리카 Basilica

 

바리우스 욕장에서 시 청사까지 뻗어 있는 약 165m 의 길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건립되었으며, 길 양쪽으로 이오니아식 기둥 위에 황소 머리 모양의 조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단 부분만 남아 있어 옛 모습을 확인 할 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데온

에페스 유적에는 북문 쪽에는 커다란 대극장이 남아 있으며, 남문 쪽에는 음악당이었던 오데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도시를 만들면 반드시 음악당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사실 소리라는 것이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오데온은 오락과 예술적인 측면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또한 정치적인 면에서도 필요한 시설이었습니다.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붕이 있었던 소극장이라고 합니다.

2세기 귀족 베디우스 안토니우스와 그의 부인 플라비아 파피아나가 세웠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음악회나 시 낭송회 등이 개최되었으며 정치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대규모 의회는 대극장에서 열렸고, 이곳은 비교적 소규모의 공연과 대표자 회의가 치러졌던 곳입니다.

 

 

 

 

오데온 앞쪽으로는 이렇게 석상들이 올려진 담이 있어, 앞쪽의 아고라와 길에서 오데온을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여러가지 모양의 석상들

 

 

 

 

 

 

 

 

 

 

 

 그리고 오데온의 객석 좌우에는 이렇게 아치형의 문이 있습니다.

 

 

 

 

가운데는 반원형의 무대, 3단의 객석..

3단의 객석 위에 올라가 바라본 풍경은 앞이 탁 틔여 있습니다.

오데온 앞으로는 바실리카가 길게 이어져 있으며 그 너머로는 위층 아고라 Upper Agora 의 모습이 보입니다. (뒤쪽의 유물들의 잔해가 흩어져 있는 곳)

 

위층 아고라는 오데온 맞은 편에 자리한 넓은 시장으로 대극장 부근에 있는 상업 아고라와는 달리 정치적 회의나 종교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길이 160m,  폭 73m 에 달하는 넓은 면적을 자라했으며, 화폐 교환이나 제한된 매매가 이루어졌던 곳입니다.

 

 

 

 

바실리카를 따라 오데온을 지나 시청사로 향합니다.

 

 

 

 

시 청사 Town Hall

 

에페스의 도시 행정업무를 관장하던 곳.

3세기에 완공되었으며, 중앙의 광장을 중심으로 도리아식  기둥의 회랑이 있었다고 합니다.

광장의 중앙에는 꺼지지 않는 성화가 있었는데, 사제관과 쿠레티,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사제들은 성화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1956년 발굴 도중 두 개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현재 셀축의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File:Artemis Efes Museum.JPG

 

사진 출처-wikipedia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

스물 일곱개의 유방은 풍요의 상징이며,

기다란 모자는 파미르 등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길다란 치마에는 각가지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시 청사에 남아 있는 기둥의 일부 

 

 

 

 

 다시 길게 난 바실리카를 따라 걷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넘게 견딘 바닥의 돌들을 밟고 갑니다.

시청사에서 서북쪽으로 난 헤라클레스 문까지는 완만한 경사 내리막 길입니다.

 

 

 

 

무슨 용도였는지 알 수 없는 잔해들을 지나 갑니다.

인구 25만 명의 도시였다고 하니, 건물들이 많았을 테지요.

 

 

 

 

길 양 옆에는 어지럽게 놓여진 건물의 잔해들이 있습니다.

 

 

 

 

길에서 내리막 길로 들어서기 전, 두개의 조각상과 석주가 보입니다.

 

 

 

 

바로 멤니우스 기념 묘 Tomb Of Memnius 입니다.

 

로마의 독재관 술라 Sulla 의 손자였던 멤니우스

멤니우스 형제는 쌍동이로 율리 시저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폼페이우스의 편에 섰다가 돌아서 시저의 편에 서게 되었지요.

그러나 다시 시저와 관계가 나빠져서 아테네를 거쳐 에페스까지 쫒겨 났다고 합니다.

 

 

 

 

멤미우스는 로마 시대를 살았지만, 그리스의 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조각상은 많이 마모되었지만, 곱슬머리의 얼굴..

옷은 가슴을 드러낸 헐렁한 로마 귀족의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옆에 서 있는 석주는 코린트 양식이라고 하지요.

 

 

 

 

아래 쪽으로 조금 더 내려와서..

 

 

 

 

멤미우스 기념 묘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양을 몰고 가는 신의 조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잠시 방향을 남쪽으로 조금 바꿔서 가면 볼 수 있는 폴리오 샘

 

 

 

 

 

 폴리오 샘의 아치

 

기원후 97년 유력한 귀족이었던 폴리우스가 건립한 샘터로 물의 궁전과 함께 에페스로 공급되는 물을 관리하던 곳입니다.

당시 물을 관리하던 수관(水官)의 위치는 막강한 것이어서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샘 옆에는  물의 궁전~

샘과 함께 물을 관리하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 인 듯 합니다.

 

 

 

 

뒤로 둘어가 보니, 벽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폴리오 샘의 아치와 발굴된 유물들

 

 

 

 

왼편에 폴리오 샘이 있다면, 오른 편에 도미티아누스 신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신전 Temple Of Domitianus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제 2의 네로라고까지 불리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철권을 휘두르며 기독교를 박해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사도 요한을 밧모 섬으로 귀양 보낸 사람도 바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입니다.

 

여기서 잠깐!

사도 요한은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제자라고 하지요.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요한 계시록을 저술하기도 하였구요.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에페스로 돌아와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도미티아누스 신전은 가로 50m, 세로 100m의 규모를 자랑하던 곳이었습니다.

입구에는 7m 높이의 황제 동상이 있었는데, 그 일부가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후일 가신들에게 피살되었다고 하지요.

 

 

 

 

가까이서 본 신전의 기둥과 조각들

 

 

 

 

이들을 보고 나서 다시 길을 내려가면 헤라클레스 문이 나옵니다.

헤라클레스는 힘과 용기 그리고 재치가 있는 영웅이지요.

그는 사자 가죽을 어깨에 두르고 에페스의 길을 지키고 있습니다.

원래 6개의 기둥에 아치가 있는 2층 문이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두 개밖에 없습니다.

다른 문과 달리 폭이 좁은 것은 수레의 통행을 제한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 문에서 바라본 쿠레테스 거리

헤라클레스 문에서 셀수스 도서관까지 뻗어 있는 대로

로마에서는 행정실무와 종교적 업무를 담당하던 사제들을 쿠레티라고 불렀습니다.

줄지어 있는 원형 기중 사이사이에 에페스 중요 인물들의 석상들도 있습니다.

 

 

 

 

쿠레테스 거리에 남아 있는 석상 중 하나

얼굴도 사라지고, 이름도 보이질 않고..

로마 시대의 주름진 의상은 남아 있네요.

 

 

 

 

 셀수스 도서관 쪽으로 더 내려와 뒤 돌아본 쿠레테스 거리

 

하드리아누스 신전, 공중 화장실, 스콜라스티가 욕장, 트라야누스 샘등이

이 거리의 원형 기둥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 소개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