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3일째 아침, 석굴암에서 해돋이를 보기로 한 날입니다.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바라본 해돋이.
동해 바다 위로 해가 떠오릅니다. 동해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해가 동해의 수평선 위로 막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늦장을 부리다가,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할 즈음, 해가 수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석굴암까지 오르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해돋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붉은 해는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모습을 드러내고...
토함산 자락들 위로, 동해 바다 위로.. 햇살이 환하게 퍼지며 아침의 기운을 뿜어냅니다.
쬐끔 아쉬운 일출이긴하였지만, 이제 천천히 석굴암을 올라가기로 합니다.
석굴암 앞의 동종
석굴암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호젓한 산책길을 걸어 석굴암을 보러 갑니다.
석굴암을 향해 오르는 길
석굴암 아래 자리한 절집
석굴암 석물
이곳에 있는 석조물들은 석굴암을 수리(1913-1915, 1962-1964년) 할 때 교체된 구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들
그뒤 일제강점기에 1913~15, 1917, 1920~23년 3차에 걸쳐 보수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많이 손상되었다. 일본인들의 잘못된 보수는 1962~64년에 정부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수리되어 석굴의 구조 및 불상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건축학적인 면에서는 앞으로 문헌자료와 함께 중수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만 창건 당시의 석굴암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석굴암 앞에 덧대어진 암자
국보 제24호. 석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부속암자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석불사(石佛寺)라고 했습니다.
삼국유사〉 권5 대성효이세부모조(大城孝二世父母條)에 의하면 751년(경덕왕 10) 재상 김대성이 발원하여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불사를,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774년 김대성이 죽자 신라 왕실에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석굴암은 김대성 개인이 창건했다기보다는 신라 왕실의 염원에 의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굴암은 여러 개의 판석과 다듬은 돌로 궁륭천장 석실의 비례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역학적으로 축조한 인공석굴이라는 점에서 인도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석굴의 구조는 전방후원식(前方後圓式)으로, 장방형의 전실(前室)과 원형 주실(圓形主室)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비도(扉道)로 되어 있습니다.
주실의 가운데 높은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의 두광은 뒷벽에 연화무늬로 조각되어 있는데, 예배하는 사람이 전실의 중간쯤 와야 광배의 중앙에 부처의 머리가 놓이고 상의 크기나 몸체의 비례감이 알맞게 보이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석굴암 내의 조각상들은 부처가 설법을 할 때 거느리고 다니는 여러 권속들로,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보살상·천부상·제자상 등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즉 석굴암의 불상은 여러 불·보살·천부상 등이 모여 하나의 작은 불국토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엵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개의 넓적한 돌로 둥근형태의 주실 천장을 교묘하게 축조한 것입니다. 이 건축 기법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뛰어난 기술입니다. 이곳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석굴암 앞에 놓인 받침대, 석등의 받침대가 아닐련지 혼자 추측을 해봅니다.
석굴암 앞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해돋이
산 뒤로 보이는 반짝이는 물빛이 동해의 감포 앞바다라고 합니다.
바람도 한순간 숨을 멈추고...
멀리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은 더욱 장엄하기만 합니다.
석굴암을 보고 돌아나오는 길
해는 더 높이 떠서 공기를 데우고, 추위를 한발짝 물러나게 합니다.
10여년 만에 간 석굴암이었습니다.
석굴암의 해돋이도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석굴암 입구에서부터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팜프렛을 달라고 했더니, 없다는 퉁명스럽 대답입니다(요즘 팜프렛을 꼭 챙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 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어디가서 얻을 수 있냐고 하니, 없다는 짧은 대답 뿐입니다.
경주는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곳이지만,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잖아요?
요즈음은 왠만한 곳에 가면, 한글로 된 팜플렛은 물론 영어로 된 팜플렛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는 곳도 아니고, 4000원이나 되는 입장료를 받으면서
안내판 두개 세워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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