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서 본 용장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입니다.
용장사의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 3층으로 쌓았는데,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습니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습니다.
윗부분이 없어진 탑의 높이는 4.5m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입니다.
바위 위에 세운 석탑으로서 통일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용장계곡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골짜기로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이며 용장사지 등 18개소의 절터와 7기의 석탑, 그리고 삼륜대좌불 등 5구의 불상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400m 아래로 내려가면 용장사터가 있는데 용장사는 이 계곡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습니다.
용장사터 동쪽 높은 바위 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고 삼층석탑 아래는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산을 늦게 오른 탓에 3층석탑만 보고 내려가기로 합니다.
석탑이 있는 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남산의 골짜기들과 멀리 경주 시내가 내려다보입니다.
석탑 아래 쪽의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 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며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설잠 스님(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세조 때까지는 용장사가 남아 있었던 듯 합니다.
볼수록 자리잡은 곳이며, 석탑의 생김생김이 시원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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