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이틀째 머무른 곳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수오재입니다.
이글의 제목이 왜 천리를 달려온 집일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듯 합니다.
우리 전통 한옥은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춘 집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곳에 있던 한옥을 저곳에 다시 그대로 세울 수가 있다고 하지요.
이곳의 한옥들을 경북 칠곡의 낡은 고택, 마산의 황부자집, 전북 김제 만경 고택 등....
전국 각지에 있는 한옥들을 가져다가 이곳에 다시 세운 집이라고 합니다.(정확한 표현은 해체, 복원했다고 해야겠지요)
이 잘생긴 한옥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곳은 네채의 한옥이 지어져 있으며, 지금은 다섯 채째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루를 보면, 이집이 다른 곳에서 보낸 세월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당호인 <수오재>는 이곳 주인장께서 정약용이 장기에 귀양와서 기록해 놓은 것을 읽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고 삼가자'라는 의미로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시문집 권13 기(記)에서(원제는 수오재기)
"대체적으로 천하의 물건은 모두 지킬 만한 것이 없고, 오직 마음만은 지켜야 한다. 나의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밭은 지킬 만한 것이 못된다. 내 집을 이고 달아날 자가 있겠는가? 집은 지킬 만한 것이 못된다. 나의 원림(園林)에 있는 꽃나무, 과일 나무 등 여러 나무들을 뽑아갈 수 있겠는가? (중략)
유독 나의 큰 형님(정약현)만은 당신의 마음을 잃지 않고, ‘수오재’에 편안히 단정하게 앉아계시니, 어찌 본디부터 지킴이 있어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큰 형님께서 당신의 집 이름을 그렇게 붙인 까닭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결국 자신과 둘째형님(정약전)은 나(吾)를 잃어 귀양 왔다고 적고 있다.
수오재의 대청마루 뒤의 문을 열면,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초등학교를 다니면 앉았던 의자도 볼 수 있고..
왜 그리 의자가 작게 느껴지는 건지...
위에 대청마루가 있던 곳의 오른편 방에 묵었었지요. 방바닥은 설설 끓고.. 경주 남산을 다녀온 뒤라 세상모르게 잤던 곳입니다.
그 방에는 주인장의 책들이 꼽혀 있었지요.
방 한켠의 커다란 책장
벽에 걸린 ㅇㅇ
TV에서 보면 이곳에 두루마기를 걸곤 하더군요.
방안의 천정을 올려다보면, 상량문이 있는데, 이집은 칠곡에서 옮겨온 집이었네요.
경주에서 이틀은 각기 다른 한옥에서 자 보았습니다.
세월에 따라 변형되어 온 우리의 한옥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시 복원하여 놓은 한옥..
제가 생각하기에는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에 깃든 사람의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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