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494m)의 모습
남산은 금오봉과 고위봉 정상을 잇는 남북길이 9km, 동서 너비 4km에 이르는 타원형으로 50여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절터 150곳, 석불 119구 등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남산이 신라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불국토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산은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사적 제 311호로 지정되었고 2000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입니다. 남산에는 용장골 삼층석탑, 칠불암 마애석불, 탑골 마애조상군 등 수많은 유물과 보물을 간직하고 있어 노천박물관으로 불리웁니다.
남산을 오르는 길.
이렇게 임도를 따라 오릅니다. 산책을 하듯이 슬슬 걷습니다.
삼화령의 바위- 저 위쪽 어딘가에 삼화령 연화좌대가 있을 터인데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해 아래서 이렇게 보고 지나칩니다.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 데 수리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는 세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의 화랑(花郞)이 기예를 닦던 장소이자, 미륵 사상이 융성했던 곳입니다.
이 곳이 미륵의 성지였음을 밝혀주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3월 3일에 경덕왕 (景德王)이 신하들과 함께 귀정문 (歸正門) 의 누각에 나가서 이르기를, 뜻과 예절을 갖춘 승려를 데려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검소한 옷을 입은 승려 한 사람이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은 그를 보고 기뻐하며 누각 위로 불러 영접하였습니다.
승려가 들고 있는 삼태기 속에는 다구(茶具)만이 가득하여,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께 드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삼화령이 미륵불과 인연이 있는 곳임이 밝혀졌으며, 경주 남산성 부근에서 삼화령과 관련된 석불 3존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륵 세존이 있었다는 삼화령의 위치와 석불 3존에 대한 존명(尊名) 등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이를 추측하는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날 남산을 오르기 전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불어서, 남산을 오를지 말지, 한동안 논의를 하였지요.
남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눈보라가 그치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어서 다행이라고 했었지요.
남산을 오르다보니, 아직 그 눈이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네요.
남산의 3대 보물 중의 하나라는 용장사지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눈이 쌓인 길을 미끄러지며 내려왔지요.
상사바위
'상사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백여 발이나 되는데 그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있어 오르기가 어렵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낮는다' '산아당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 곳이라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 있다'위의 글은 <동경잡기>에 실려 있는 상사바위에 대한 기록입니다.
상사바위는 높이가 약 13미터, 길이가 약 25미터 가량 되는 큰 바위로 이 바위를 서편에서 보면 냉골 여울에 뿌리를 내리고 수십미터 높이를 솟아오른 첨탑처럼 보이고 동쪽에서 보면 염라대왕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상입니다.
바위 중간 쯤에 가로파인 틈에 돌을 던져 그곳에 얹히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던진 돌이 떨어지면 바위신이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상사바위의 남쪽편에 아기를 낳는 듯 한 갈라진 바위인 '산아당'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삼릉계곡으로 가는 길에 상선암이란 암자가 있습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바로 아래 위치한 암자이지요.
남산 안내 지도
이날은 염불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곳을 지나 임도를 따라 올랐다가 삼화령을 지나 삼릉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남산을 오르기 전에 본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
<삼국유사>에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17만호에 들리지 않은 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니 그의 초상을 흙으로 만들어 모시고 염불사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너져 있던 전 염불사지 석탑 2기의 탑재와 도지동 이거사지 삼층석탑의 1층 옥개석을 이용하여 1963년 불국동 구정광장에 삼층석탑을 세웠는데, 2008년 복원을 위해 해체하여닸가 2009.1.15일 석탑 2기와 주변 정비를 완료하였다고 합니다.
최초 탑 건립시기를 7세기말 또는 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체후 복원하고 남은 석재들을 한곳에 모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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