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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올림픽공원과 몽촌토성

 

 2008년 11월 10일, 송파구 위례성길, 은행나무 길을 다녀왔어지요. 그 길 바로 옆에 위치한 올림픽공원을 아니 다녀올 수가 없겠지요? 

4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몽촌토성과 근대의 한부분이었던 올림픽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지요.

먼 선조들의 이야기와 근대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현재가 만나고 있는 곳입니다.

 

올림픽 공원의 평화의 광장의 <세계 평화의 문>입니다. 올림픽공원을 떠올릴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지요.

 올림픽 공원은 1984년 착공해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를 대비헤 1986년 5월에 준공한 곳입니다.

 총면적 1.67㎢의 대규모 스포츠단지로, 몽촌토성지역을 중심으로 한 6개의 경기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촌토성과 주위 녹지를 조성하고, 1986년에 올림픽 회관과 5개의 경기장(체조·역도·펜싱·테니스·벨로드롬)을 건립한 후, 1988년 수영경기장·조각공원을 확충하여 서울 올림픽 대회를 개최했지요.

 올림픽 공원은 1956년 제17회 멜버른 올림픽 대회부터 해당도시에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서울 올림픽 공원은 백제 도읍의 고대유적지인 길이 2,285m에 이른 몽촌토성(사적 제297호)을 발굴·복원해 조성했습니다.

공원 내에는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세계평화의 문', '서울의 만남', '영광의 벽'을 비롯해 초기 백제시대 유물이 전시된 몽촌역사관이 있으며, 66개국의 세계적인 현대조각·조형작가에 의해 제작된 200여 개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밖에 1990년 9월에 개관된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는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의 이모저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울 올림픽 기념관이 있다고 합니다.

 몽촌토성의 해자의 모습입니다.

올림픽공원과 몽촌토성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입니다.

 멀리 서울올림픽 기념관이 있다는 서울올림픽파크텔의 모습도 보입니다.

몽촌해자는 전체면적 36000평, 수심은 1.5m-2m, 둘레는 4620m 규모로 몽촌토성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용 인공호수라고 합니다.

공원의 오후란 이런 것이지요. 아이는 넓은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시간은 조금씩 물 흐르듯... 흐르는 그런...

각국의 국기들이 펄럭이는 이곳은  영광의 벽입니다. 서울 올림픽에 대한 자료들을 새겨 놓은 곳입니다.

올림픽에서 치러졌던 종목들이 적혀 있네요.  

 국가별 메달획득 순위가 적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때 4위를 했었군요. 오래된 일이라 잊고 있었던 건데...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올림픽공원에서 해자를 건널 수 있는 곰말다리 위에서 찍은 풍경~

다리 난간에 핀 꽃들과 하늘의 흰구름이 어우러져...

 이 사진을 찍은 곰말다리는 원래는 몽촌교라고 불리우던 다리라고 합니다. 몽촌이란 우리말로 하자면 <꿈마을> 이라고 합니다. 곰말은 꿈마을의 옛말이라고 합니다.

꿈마을다리... 곰말다리..  둘다 이쁜 우리말이네요.

곰말다리를 지나면 몽촌토성을 오를 수 있습니다. 총 2340m의 몽촌토성 산책로가 시작됩니다. 몽촌토성에도 가을이 가득합니다.  

 토성 산책로에서 바라본 풍경

토성은 백제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주변의 아파트들은 현재를 이야기 합니다.

몽촌토성은 백제초기에 타원형의 야산 위에 진흙을 쌓아 만든 토성입니다. 이웃해 있는 풍납리토성, 아차산성과 함께, 적으로부터의 방어와 보호의 중요한 임무를 띠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성의 둘레는 2.7km, 높이는 6-7m 입니다. 성을 방비하기 위해서 성벽 위에는 목책을 세우고, 해자를 설치하는 등, 다른 성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적 제 297호. 토성 내의 마을이름인 '몽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1984~89년에 걸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했다고 합니다.

그 내부에서 백제 초기의 움집터와 기와 및 토기를 비롯한 각종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성곽의 전체둘레는 2,285m이며 총면적은 21만 6,000㎡이지만, 외성을 합할 경우 총면적은 30만 2,500㎡에 달한다고 합니다.

성벽은 자연지물을 이용한 판축법(板築法)으로 축조되었는데, 8,000~1만 명 정도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는 모두 9개소인데, 북문터·동문터·남문터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성 안에는 남북을 잇는 도로와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대체로 바둑판 모양의 직교식(直交式) 형태를 띠고 있는데, 고구려 왕성이었던 국내성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도로 설계에 있어서 조직적인 배열을 갖추도록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성 내에서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와당류·토기류·석기류·철기류 및 갑옷편, 그리고 일반 공구들이 보이며, 토기류 가운데는 광구장경구형호·흑색마연연질토기·무개고배류 외에 백제의 대표적 토기라 할 수 있는 삼족토기(三足土器)가 다량으로 출토되어, 몽촌토성이 백제의 성곽임을 분명히 밝혀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서진(西晉 : 266~316)의 전문자기편(錢文磁器片)이 출토되어 몽촌토성의 축조시기를 3세기말에서 4세기초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성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530년 된 은행나무

 4세기에 지어진 토성에 530년 된 은행나무~ 나무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제 몸안에 간직하고 있겠지요.

봄이면 푸릇하게 새 잎을 내고, 가을이면 이렇게 노랗게 물들며, 제 안에 세월을 새겨넣고 있는 것이겠지요. 530년의 세월 속에 토성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올림픽공원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왕따나무~

나무 이름이 마음에 안듭니다. 나무에게 나무 친구가 가까이 있지 않다하여, 왕따나무라니요?  나무에게는 바람도, 새들도 다 친구가 되지 않을까요?

 잔디가 푸르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봅니다.

 몽촌역사관을 들러봅니다. 몽촌토성에 관한 이야기를 제게 들려줄테지요.

그러나 ㅠㅠ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하네요. 닫힌 문과 관람안내판이 저를 맞이해줍니다.

83년-89년까지의 발굴에서 발견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몽촌토성 산책길을 따라 다시 걷습니다. 목책이라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의 목책은 철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기간에 걸쳐 적을 방어하는데 씌였다고 합니다. 목책은 단순히 목책만을 설치한 곳이 있고, 몽촌토성처럼 토성과 함께 목책을 설치한 곳도 있다고 합니다. 이 목책은 발굴조사 때 원래의 목책기둥이 있던 자리에 추정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목책 높이는 2m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쌓인 낙엽 위로 이곳의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4-5월에 핀다는 겹철쭉이 활~짝 피었습니다. 요즈음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집앞의 천변에는 유채꽃이 무리지어 피었더군요.

 소풍 나온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낙엽을 한웅큼 쥐어서 하늘로 날려보고, 동시에 까르르~ 웃고, 소리지르고, 사진찍기를 합니다. ㅎ

 붉은 단풍아래 낙엽은 쌓이고... 벤치에 앉아 나는 편지를 써야 할 듯 합니다.

  토성에서 내려오는 길.. 길은 공원 산책로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합니다. 멀리 체육관의 모습도 보입니다.

  

 토성은 이렇게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토성 중간에 움집터를 만납니다. 이곳도 월요일은 휴관~ ㅠㅠ

토성내의 4곳의 지상건물터와 12곳의 움집터가 확인되었다고 하네요.

 

  공원 산책로에서 토성 산책로로 오르는 길.

 

오랜만에 간 곳입니다. 거의 20년 쯤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기억나는 거라고는 평화의 문과 조각공원 뿐입니다.

기억은 늘 단편적이고, 현재의 나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집니다.

예전의 갔던 곳과 지금 이곳이 같은 곳인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