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과거 동서남북에 4개의 큰 문과
2개의 작은 암문(暗門, 야간 통행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구읍성’을 드나드는 성문이었던 것입니다.
4대문은 동문을 진동문(동성로 부근), 서문을 달서문(서성로 부근),
남문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남성로 부근)으로,
그리고 북문은 공북문(북성로 부근)으로 이름 지어졌습니다.
그중에서 4대문의 중심이었던 영남제일관..
대구의 남대문이 이곳을 소개합니다. (2011년 5월 1일)
전날 대구의 금호강변의 인터불고 호텔에서 묵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금호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행 중에 비를 만나는 일은
조금 귀찮은 일이지요.
전날 비가 많이와서 카메라에 우산들고 돌아다니느라 고생하였던 여행자는
아침의 환한 햇살이 반갑기만 합니다.
인터불고 호텔의 뒤쪽으로 난 산책을 따라 걷습니다.
대구읍성의 축성 기록이 담겨 있는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에 따르면 선조 23년(1590년) 에 의하면,
최초 토성으로 쌓여졌지만 임진왜란으로 무너지고,
이후 영조 12년(1736년) 대구에 부임한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 민응수의 건의를
조정에서 받아들여 축성했다고 전해집니다.
1736년 1월8일 공사를 시작해 6개월간 공사를 했으며,
동원된 인원만 7만 8천584명이었고
완공된 성의 둘레는 2천650m,
여첩(女堞·적의 화살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방어시설)819개,
성 높이가 서남쪽 5.5m, 동쪽 5.1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금호강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영남제일관
하지만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7년..
기록에 의하면, 그 무렵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왔고, 그들은 성 외곽인 대구역 부근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당시 경상감사 서리는 땅값을 높이고
상권을 넓히려는 일본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성을 헐어버렸다고 합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요.
영남제일관의 뒷모습
실제로 성벽을 허물자 땅값이 10배나 폭등하였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일본인 세력을 비호하려고 성을 허물고
다른쪽에서는 항일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이 일었났으니
같은 시기, 한 도시 안에서 일어난 상반된 일은
그시절을 짐작케 합니다.
결국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와서야 수성구 만촌동 망우당공원에 복원됐다고 합니다.
영남제일관 아래에는 대구부 수성비와 영영축성비가 서 있습니다.
대구부 수성비는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김세호가 경상감영의 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뒤,
그 사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비문의 내용은 1870년(고종7년) 봄에 수리를 시작하여
그해 11월에 마쳤는데, 원래보다 높이와 크기를 키워서 동서남북의 성벽 위에 새로이 4개의 누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누각의 이름은 동을 정해루, 서를 주승루. 남을 선은루, 북을 망경루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 비는 본디 남문 밖에 세워진 것이었으나
1906년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한 곳에 자리잡지 못하다가 1932년 대구향교로 옮겼습니다.
그 뒤 1980년 남문을 다시 세우면서 비석도 이 자리로 옮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비문은 관찰사 김세호가 지었고
글씨는 절충장군 최석로가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편의 영영축성비..
이 비는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민응수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대구읍성을 쌓은 뒤
그 규모와 공사과정을 기록하여
1737년(영조13년)에 세운 것입니다.
성의 둘레는 총 2,124보, 성 위에서 몸을 숨기고 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 수 있게 한 담인 여첩이 819첩,
성 높이는 서남이 18척, 남북이 17척, 뒤축대의 넓이가 7보,
높이가 3급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 또한 원래 남문밖에 세웠는데,
성이 헐릴 때,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 1980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비문은 민응수가 짓고, 글씨는 백상휘가 썼다고 합니다.
아침의 망우공원은 한가하고 고요합니다.
산책하기에 좋은 길들이 이어집니다.
영남제일관 앞길은 금호강을 바라보면서
산책할 수 있는 길들이 이어집니다.
영남제일문을 지나고, 도로 위의 다리를 지나갑니다.
임진왜란 방어의 민간인 주역이었던 홍의장군 곽재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금호강변에 서 있기도 하구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기념관은 열려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홍살문이 보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라는군요.
홍살문 안쪽의 임란호국영남충의단입니다.
315위 의열사 신위를 모신 곳이라고 합니다.
그를 기리는 전시관까지..
그리고 길은 항일독립운동 기념탑까지 이어집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갑니다.
다시 영남제일관 앞...
대구 읍성은 기품있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1888년 대구를 다녀간 프랑스인 샤를 바라는 '조선기행'에서
대구읍성이 "북경성처럼 그 성벽의 각 면에는 웅장한 성문이 서 있었다"고 적어 놓았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성과 성문은 100여년 전에 헐리고
이제 새로운 성문이 읍성도 없이
금호강변에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여행자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강변의 한적하고 산책하기 좋은 공원..
그 공원은 많은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귀를 세우고 마음을 열어보는 시간..
아침의 망우공원은 시간은 넉넉함으로 다가옵니다.
망우 공원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IC - 시청방향 - 화랑교 - 망우공원
또는 지하철 1호선 아양교역이나 2호선 민촌역에서 하차하여 택시로 5분거리
대구의 또 다른 볼거리를 찾으신다구요?
클릭해보세요~
도심 한복판,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좁은 골목에서 만나는 근대의 추억- 대구 골목투어1 http://blog.daum.net/sunny38/11775525
골목 곳곳에 문인의 흔적이 흐르고 이야기가 넘치는 곳-대구 골목투어2 http://blog.daum.net/sunny38/11775537
대구의 진짜 골목(진골목)에서 만나는 옛 풍경들-골목투어3 http://blog.daum.net/sunny38/11775540
진한 허브향기와 푸르른 초록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대구 허브힐즈 http://blog.daum.net/sunny38/11775508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그릇-대구 방짜유기 박물관 http://blog.daum.net/sunny38/11775499
우리시대의 영원한 가객 김광석, 그를 다시 그리다-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http://blog.daum.net/sunny38/11775517
'경상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방문 의해 및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 대구광역시 문화관광 2차 팸투어 (1) | 2011.06.27 |
---|---|
외로운 구름도 멈춰서는 절집- 의성 고운사 (0) | 2011.06.07 |
대구의 진짜 골목(진골목)에서 만나는 옛 풍경들-골목투어3 (0) | 2011.06.05 |
작약꽃 만발한 잃어버린 왕국에 서다-의성 조문국 유적지 (0) | 2011.06.04 |
그윽한 향기로 유혹하는 작약꽃이 만발한 들판-의성 경북신물질연구소 (0) | 2011.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