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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봄소풍처럼 떠나보는 강진여행-다산초당, 백련사

 

 

“삼경에 비가 내려 나뭇잎 때리더니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다오

혜장과는 참으로 연분이 많은지 절간문을 밤 깊도록 열어놓았다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견월첩에서

 

견월첩(見月帖)-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 주지 혜장선사와 주고받은 시문과 편지를 친필로 정리한 서첩

 

 

 

 

 

 

다산초당과 백련사, 

정약용 선생과 혜장스님.. 

 

둘을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곳이지요. 

 

맨 처음 언급한 문구처럼 

빗 속을 뚫고 다산 정약용 선생을 만나러 온 혜장스님

그 스님과의 우정과 추억을 서첩으로 남겨 놓기도 하였던 정약용 선생.. 

 

 

 

 

 

 

 

강진다원, 무위사, 월출산 천황사 지구에 이어 다산초당으로 향합니다. 

강진여행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봄소풍처럼 떠나보는 강진여행, 

다산초당, 백련사입니다.(2024년 4월 28일)

 

 

 

 

 

 

 

다산초당을 오르는 길, 

오른편에 다산의 제자였던 윤종진의 묘가 있습니다. 

 

 

 

 

 

 

 

초당을 오르는 길.. 

예전에는 뿌리의 길이라하여

나무 뿌리들이 드러나 있던 길이었는데, 

안전을 이유로 2년 쯤 전에 정비를 하였다고 하네요. 

 

초당보다도 그 뿌리의 길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곳인데, 

세월의 흐름과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인 듯도 합니다. 

 

 

 

 

 

 

왼편의 동암이 보이고, 

그 옆으로 다산초당이 보입니다.

 

다산에 관해 공부를 조금 해보자면~

 

남인 학통..

남인의 시작은 퇴계 이황선생이시지요. 

 

노론세상에서 1795년 남인으로서는 오랜만에 채제공이 좌의정에 올랐고

이가환 선생은 공조판서가 정약용 선생은 동부승지가 되었지요.

 

남인들의 정계진출이 못마땅했던 반대세력들은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남인들을 사학에 물든자들이라고 하여

상소와 탄핵을 반복하다

결국 1801년 신유박해 때 정약종(정약용 선생의 셋째형), 황사영(정약용 선생의 조카사위),

이승훈(정약용 선생의 매부-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 은 처형되고

정약전(흑산도 유배), 정약용(강진 유배)은 유배 길에 오르게 됩니다.

 

 

 

 

 

 

 

 

학문적 이상을 정치개혁과 사회변혁을 통해 이루고자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꿈들..

 

정석

초당 뒤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정석(丁石),

다른 수식어는 없습니다.

자신의 성 정(丁)자와 석(石)만이 새겨진 바위는

유일한 말벗 혜장선사를 먼저 떠나보내고

유배지에 홀로 남은 외로움을 바위에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정석이 새겨진 바위 앞에서 바라본 초당의 모습... 

 

젊은 시절, 새로운 학문인 서학을 만나고

수학과 천문학, 건축학, 지리학까지 망라하여 다양한 학문을 접했던 정약용 선생은

다양한 방면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사상적 유산을 남겨 놓았습니다.

 

다산 사상의 요체는 개혁이라고 합니다.

그가 남긴 600여권의 저서들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고 하지요

 

경제는 물론 의학, 국방까지 다양한 방면에 조예가 깊었던 정약용 선생

 

스무 살 무렵에

이 우주의 모든 일을 다 깨닫고 그 이치를 완전히 정리해 내리라 마음먹었다던 그는

날개가 꺾어 강진으로 유배되어 왔지요.

 

 

 

 

 

아버님,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어머님,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집안이 갑자기 무너져버려

죽은 자식 산 자식 이 꼴이 되었어요.

남은 목숨 이어가 봐도

크게 이루기는 이미 틀렸답니다.

자식 낳고 부모님은 기뻐하시며

부지런히 어루만져 길러주셨지요.

하늘 같은 그 은혜 꼭 갚으려 했는데

이리 풀 베듯 베일 줄 생각이나 했을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는

자식 낳았다 축하 말라 해야겠네요

 

-하담의 이별, 정약용, 1801년-

 

하담에서 이런 시 하나 남겨놓고 유배길에 오른 정약용 선생..

그리고 18년의 세월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지요.

 

 

 

 

 

 

 

다산초당입니다,

다산이 1808년 봄부터 1818년 가을까지 지낸 거처입니다.

 

이곳에 거처하기 전까지 7년간 강진의 주막과 암자, 제자의 집을 전전하였다고 하지요

 

해남 윤 씨 집안의 정자였던 이곳은

다산의 학문적 연구를 집대성하고 제자를 키우는 곳이 되었었지요.

 

참고로 해남 윤씨는 다산의 외가입니다. 

공재 윤두서가 다산의 외증조부입니다. 

 

 

 

 

 

 

초당 옆에는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연지석가산라 이름붙여 놓았습니다.

이 연못에는 잉어도 키웠는데 유배생활이 풀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잉어의 안부를 물을 만큼 귀하게 여겼다고 하지요.

 

 

 

 

 

 

 

다산초당은 1957년 다산유적 보존회에서 복원한 곳입니다. 

원래 초당의 의미 그대로 초가로 복원할까도 했었는데

사람이 살지않는 초가는 1년마다 지붕을 교체를 해야해서

오랜 논의 끝에 기와로 복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초당의 앞의 넓적한 돌은 다조라고 하여

찻물을 끓이던 차 부뚜막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다산초당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집자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안경을 쓴, 

온화한 선비의 모습을 한 다산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산동암

다산이 머물고 집필을 한 곳이라고 하지요. 

오르면서 보았던 입구의 다산 서암은 제자들이 머물던 곳입니다. 

 

다산동암 현판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으며, 

보정산방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중년에 쓴 글씨라고 합니다. 

 

 

 

 

 

 

 

이제 동암을 빠져나와 백련사로 향합니다. 

동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천일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강포가 내려다 보이는 곳... 

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이지만,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을 다산을 생각하며 

그 자리에 만든 정자라고 합니다. 

 

'하늘 끝 한 모퉁이'이라는 천애일각에서 따온 천일각

 

 

 

 

 

 

천일각에서 보이는 바다풍경을 뒤로하고

이제 백련사로 향합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1킬로..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 온 지 4년 후인

1805년 백련사의 아암 혜장선사(兒巖 惠藏禪師)를 찾아

‘주역’과 ‘역경’ 이야기로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정약용 선생이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1km 남짓한 오솔길을

하루가 멀다하게 오가며 학문적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일명 다산선생과 혜장스님을 이어주던 우정의 길~

 

 

 

 

 

 

 

초당과 백련사 가는 길의 중간 즈음에 자리한 해월루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백련사를 가다 다리 쉼을 하기 좋은 곳입니다

 

 

 

 

 

 

 

 

 

 

 

 

 

 

 

초당과 백련사 근처의 숲은 

울창하고 빽빽합니다. 

 

 

 

 

 

 

 

 

승려임에도 유가와 도가에 관심이 많고 식견이 있었던 혜장선사와

경학(사람을 중시 여기는 유교경전)에 밝고 학문적 깊이가 남다른 다산은

열 살의 나이차와 유가와 불가라는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진솔한 만남을 가졌다고 하지요. 

다산은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라며

오솔길을 걸어 혜장선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수시로 기약도 없이 서로를 찾아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길을 따라 백련사로 향합니다. 

길은 아름답고 그윽합니다. 

 

 

 

 

 

 

 

 

나아가 혜장스님은 그의 많은 제자들이 다산과 교류하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흥사에 있던 초의선사(1786~1866)에게 다산을 소개시켜 줘

차를 중심으로 정약용 및 서울의 명망 있는 학자들과 교류하고 오랜 연을 갖도록 하였다고 하지요.

 

혜장스님이 39세에 요절하자 정약용은 입적을 매우 슬퍼하며

탑명을 직접 써서 그를 기렸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정담을 나누는 즐거움과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했던 마음들은

‘견월첩’에 오롯이 기록되어 있고

정약용 선생의 ‘만덕사지(萬德寺誌)’에 백련사에 대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그 오솔길의 끝에 백련사 차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멀리로는 강진만의 바다가 보입니다. 

 

 

 

 

 

 

 

그 차밭 옆에는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련사 남쪽과 서쪽 구간 5만㎡에 달하는 면적에

1500그루 동백나무가 밀집한 군락지가 있고

1km의 오솔길에는 높이 7m에 달하는 큼직한 동백나무도 즐비합니다.

 

수령이 적게는 100년에서 길면 300년에 이르는 동백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숲길입니다. 

 

 

 

 

 

 

 

동백나무 숲으로 들어가기 전

백련사 차밭에 눈길 한 번 더 줍니다. 

 

 

 

 

 

 

 

 

찻잎을 따고 계시네요. 

 

 

 

 

 

 

 

 

단풍나무 숲과 어우러진 차밭

 

 

 

 

 

 

 

 

 

 

 

 

 

 

 

 

차밭을 지나 동백나무 숲... 

이날 백련사 절집을 보기도 전에 반했던 길... 

 

 

 

 

 

 

 

 

동백꽃이 피는 계절은 지났지만

붉은 동백 한 두송이가 피어

여행객들을 위로해 줍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

이구동성으로 이 동백나무들 꽃 피는 계절에

다시 찾자고 말하네요. 

 

 

 

 

 

 

 

함께라서 좋은 날!

 

 

 

 

 

 

 

동백나무숲길을 지나 백련사가 보입니다. 

 

 

 

 

 

 

 

 

조계종 대흥사(大興寺) 말사인 백련사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408m)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만덕사(萬德寺)라고도 불리운 곳입니다. 

 

 

 

 

 

 

 

 

 

 

 

 

 

 

 

이날 백련사에서 동백나무숲에 이어 두번째로 반한 나무

배롱나무입니다. 

 

 

 

 

 

 

 

 

 

 

 

 

 

 

 

 

수령이 오래되었을 아름다운 배롱나무... 

 

 

 

 

 

 

 

 

배롱나무 그늘을 지나

 

 

 

 

 

 

 

 

만경루 아래 서면 대웅보전이 바라보입니다. 

 

 

 

 

 

 

 

 

먼저 만경루에 올라봅니다

 

 

 

 

 

 

 

 

 

 

 

 

 

 

 

 

 

 

 

 

 

 

 

 

 

누각에 서서 바라본 강진의 바다와 배롱나무

 

 

 

 

 

 

 

 

그리고 대웅보전

 

 

 

 

 

 

 

 

대웅보전 지나 산신각 쪽으로 오르면

풍경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곳에도 아름다운 배롱나무 한 그루 

자리하고 있습니다. 

 

 

 

 

 

 

 

돌아서 나오는 길, 

모란이 이제 막 피고 있습니다. 

 

영랑생가는 모란이 만개하였겠다는 

이야기를 해봅니다. 

 

 

 

 

 

 

 

 

 

 

 

 

 

 

 

 

그리고 만덕산 백련사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왔더니

일주문을 맨 마지막에 보네요. 

 

 

 

 

 

 

 

다시 차를 두었던 다산초당 아래

귤동마을로 옵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숲길로 간 후에, 

백련사에서 택시를 타고 다산초당으로 왔습니다. 

 

강진 도암택시에 전화하니 

금방 백련사로 오시더군요. 

 

1킬로 숲길 다시 돌아가기 싫으신 분들은 

택시를 이용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https://sunny38.tistory.com/11776523#:~:text=%EC%88%B2%EC%9D%84%20%EA%B0%80%EB%A5%B4%EB%8A%94%20%EB%B0%94%EB%9E%8C%EA%B3%BC%20%EC%B0%A8%20%ED%96%A5%EA%B8%B0%EB%A5%BC%20%EB%A7%A1%EC%9C%BC%EB%A9%B0%20%EC%98%A4%EB%A5%B4%EB%8A%94%20%EA%B8%B8%2D%EB%8B%A4%EC%82%B0%EC%B4%88%EB%8B%B9/%EA%B0%95%EC%A7%84%20%EC%97%AC%ED%96%89

 

숲을 가르는 바람과 차 향기를 맡으며 오르는 길-다산초당/강진 여행

천리 밖 두 마음 옥인 듯 맑고 찬데 애처로운 사연 보니 그리운 맘 더욱 깊소 나 그리는 그대 생각에 잠이 들고 잠이 깨고 그대 그리워하다 보니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생

sunny38.tistory.com

 

2013년에 갔을 때인데, 

뿌리의 길을 보시라고 링크 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