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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 활짝 핀 서원-장성 봉암서원

 

여름꽃, 

배롱나무 꽃 

여기저기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배롱나무 꽃을 만나러 장성을 다녀왔습니다. 

 

장성 봉암서원, 

장성 황룡강변, 

장성 요월정원림을 돌아보고 옵니다. 

 

 

 

 

 

 

배롱나무 꽃 활짝 핀 서원

장성 봉암서원입니다.(2023년 8월 12일)

 

 

 

 

 

 

서원 입구부터 배롱나무 꽃이 반겨줍니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배롱나무 꽃이

좀 아쉽습니다. 

 

 

 

 

 

 

 

긴 장마와 폭염이 꽃에게도 그리 좋을리 없는 듯 합니다.

 

 

 

 

 

 

 

 

 

 

 

 

 

 

 

늘 꽃보다 먼저 반하게 되는 배롱나무 줄기도

담아봅니다. 

 

 

 

 

 

 

무궁화 꽃도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곳입니다

 

 

 

 

 

 

꽃이 이제 피고 있습니다

 

 

 

 

 

 

 

서원을 들어서기 전, 

담장 밖에서 서성여봅니다. 

 

떨어진 꽃잎들이 담장에 내려 앉아 있습니다

 

 

 

 

 

 

같은 곳... 

 

 

 

 

 

 

조금 다른 풍경... 

 

 

 

 

 

 

 

다른 담장 밖에서도 한 장 담아 봅니다. 

 

 

 

 

 

 

 

봉암서원

강당에 봉암서원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봉암서원(鳳岩書院)은 변이중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변이중은 이곳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면서 학문을 닦고 연구했다.

변이중 별세 후 87년 만인 1697년(숙종 23) 호남의 유림과 후손이 주도하여 봉암서원을 건립했다.

1705년에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중수했고,

1707년에 변이중의 아들 변경윤을 배향하고 전사청을 세웠다.

1729년에 윤진(尹軫)과 변이중의 현손(玄孫) 변휴를 추가로 배향했다.

도내의 유생들이 상소하여 서원에 사액해 줄 것을 청하여 임금의 윤허를 받았으나 시행되지는 않았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종앙사(宗仰祠)에는

망암(望菴) 변이중(邊以中), 율진 윤진(尹軫), 휴암 변윤중(邊允中),

자하 변경윤(邊慶胤), 명산 변덕윤(邊德胤), 청류당 변휴(邊烋), 묵포 변치명(邊致明)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변이중을 주벽으로 모시고 다른 여섯 분은 배향으로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는 인물은 변이중, 변윤중, 윤진 등 3인인데

윤진은 정유재란 때 입암산성에서 성을 지키다 순절한 무인이다.

 

-다음백과사전 중에서-

 

 

 

 

 

 

 

 

 

 

 

 

 

 

 

 

 

 

 

 

변이중

변이중은 1546년 5월 17일 장성군 장성읍 장안리에서 태어났다.

1573년 28세에 사마시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예조정랑에 임명되었고 선조 임금의 파천 길을 수행했다.

3차에 걸쳐 일본군 토벌대책을 상소했으며

1592년 10월 윤두수의 천거로 전라도 소모사(召募使)가 되어 전라도로 내려왔다.

근 40여 일 동안 6천 명에 달하는 병사를 모집했으며

12월에는 병사들을 이끌고 서울 방면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의병부대는 1593년 1월말 경기도 안성 일대에서 있은 죽산전투에서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이끄는 일본군에게 패했다.

당시 그의 부대는 소가 끄는 화차로 죽산성을 공격하여 적진을 교란시켰지만

목제 무기임을 간파한 일본군이 화차에 불을 던져 다수의 조선병사들이 사상하는 피해를 입었다.

경기 독운사(京畿督運使) 등을 역임하며 의병을 일으키고,

수만의 정병을 모집했으며 3만여 석의 군량을 조달했다.

그는 의주 행재소에서 임금으로부터 소모어사의 명을 받고

전라도에 내려와 많은 의병과 양곡을 모아 전선으로 보내는 한편

경기도 수원에 진을 치고 기호지방의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는 총통화전도설(銃筒火箭圖說)과 화차도설(火車圖說)을 저술했으며

종제인 변윤중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화차1) 300대를 제작했다.

그리고 당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던 권율 장군에게

40대를 보내 행주산성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학자이자 발명가인 변이중은 1603년 함안군수가 되었다가

2년 후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란 후에 호성원종공신 1등,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으며

고향마을에서 ‘장성 향헌 20조’를 만들어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고

향속과 풍습을 순화하는 데 힘쓰다가 1611년(광해군 3) 66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조참판의 벼슬을 내렸다.

 

-다음백과사전 중에서-

 

 

 

 

 

 

 

 

 

 

 

 

 

동백나무에 열매가 열렸네요

동백꽃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백나무 열매입니다

 

 

 

 

 

 

 

담장 위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강당의 반대편으로 돌아갑니다

성경당... 

 

 

 

 

 

 

긴 마루

 

 

 

 

 

 

 

 

 

 

 

 

 

강당을 마주보고 있는 내삼문과 그 뒤의 서당

 

 

 

 

 

 

 

내삼문 앞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서원은 전형적인 서원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외삼문

강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

그리고 내삼문과 사당... 

 

 

 

 

 

 

 

 

 

 

 

 

 

다시 서원 밖으로 나와서

배롱나무 아래를 서성입니다

 

 

 

 

 

 

 

 

 

 

 

 

 

 

 

 

 

 

 

 

 

 

 

배롱꽃이 피고지고... 

여름 날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