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학문을 하루도 폐하지 말 것
책을 열람할 제 더럽히거나 찢지 말 것
가벼이 빌려주지 말며 빌려줄 때는 반드시 적어둬 돌려받을 것
7월 초에 한차례 햇볕을 쬐어 좀과 습기를 막을 것
자손 중 한 권 책, 한 뼘 땅, 푼돈, 한 말 곡이라도 공물을 횡령한 자는 본당 출입을 금한다.
'광거당 전수규약' 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공물을 횡령한 자는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130여년 전 문익점의 18대손이 터잡은 인흥마을 남평 문씨 세거지의 문중문고..
앞서 소개한 광거당을 지어 만권당을 두었다고 합니다.
광거당 다락에서 한국전쟁을 온전히 버틴 책들..
1982년 서고를 따로 짓고 인수문고 현판을 달아
한자리에 합쳐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3대 100년에 걸쳐 이룬 문중문고..
인수문고입니다. (2011년 7월 3일)
인수문고는 인흥마을의 대표건물인 수봉정사와 담을 나란히 하고 서 있습니다.
수봉정사 또는 수백당이라 불리우는 집..
수백당이란 깨끗함을 지키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아침이었지요.
비오는 날, 한옥마을을 둘러보는 일은
운치를 더하는 일이지요.
문제는 카메라와 우산..
렌즈에 빗방울이 묻은 사진들도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인흥마을 입구에 서면,
관람안내가 적혀 있는 반쯤 열린 대문..
그 너머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돌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마당의 길이 어쩐지 정겨운..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면,
수봉정사의 솟을대문이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시원스런 수백당이 자리하고
그 앞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시원스런 그늘을 드리고 서 있습니다.
인수문고를 만든 이는 문영박 선생..
그의 호는 수봉 또는 수백당..
그의 호를 딴 건물이로군요.
그는 서른 즈음인 1910년부터 타계한 30년 직전까지
20여년에 걸쳐 모아들인 것이라고 합니다.
일찌기 국토를 순례하며 견문을 넓히고
1910년 따로 광거당을 지어 만권당을 두었습니다.
그곳에서 매일 5~6명의 유림이 모여 필요한 책 목록을 만들고
하나하나 사들였다고 하지요.
대구시내는 물론 서울을 수시로 다니며 직접 책을 구입하고
중국 쪽에서는 창강 김택영(1850~1927)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배로 목포까지 실어온 책은 다시 달구지로 여러 차례 인흥으로 옮겨졌다고 하니
얼마만한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 놓은 문고인지 짐작이 갑니다.
수봉정사는 이곳 인흥마을에서
마을 공동의 배움터에 해당하는 곳으로
마을 입구쪽 대문과 마을 안쪽 대문이 있어
사방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행랑채와 우물..
수봉정사에서 인수문고로 가는 길..
낮은 문을 넘어서니 인수문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른편 건물이 인수문고..
정면에 보이는 곳은 중곡서고..
문고의 규모는 1095종 6948책.
경(經) 536책, 사(史) 1813책, 자(子) 588책, 집(集) 4011책입니다.
개인 문집인 집부(60%)가 가장 많고 사, 자, 경 순이라고 합니다.(1975년 조사 결과)
근자에 나온 문집, 전적류 1000책과
집안의 개인 장서 600책을 더해 모두 8500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놀라운 규모입니다.
19세기의 책이 흠없이 보관되어 온 곳입니다.
갈색 오동나무 상자가 서가에 가지런하고
개개 뚜껑에는 속에 든 책이름과 책수가 적혀 있습니다.
두께에 따라 30~40책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76책인 <강목(綱目)>은 두 상자에 나뉘어 담겼다고 하네요.
문중문고 지킴이이신 분이 특별히
1869년 판 <명심보감> 목판각을 보여주십니다.
100여년 전 나라를 잃은 뒤
팔도, 중국에 산재한 역사서, 문집들을 20여년 간 모은이와
그것을 지키고 간직한 후손들이 있어
오늘날의 인수문고가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희귀, 진귀본들이 아닌
기초학문에 필요한 것 위주여서
국권회복 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마을 쪽으로 통하는 수봉정사의 문..
골목길에 서서 수봉정사를 바라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하는 생각이 두서없이 들더군요.
비오는 인흥마을을 돌아보며
세월의 흔적이 남은
저 대문들, 저 수봉정사.. 인수문고..
그 위에 더 오래도록 세월의 흔적들이
새겨지기를 바래보는 여행자입니다.
인흥마을 찾아가는 길
화원읍 소재지에서 현풍방면으로 5번 국도 → 화원 삼거리를 지나 화원교 바로 전 좌측 마을 입구에서 2.7km
인흥마을을 아직 둘러보지 못하셨다구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머물렀던 인흥사터에 지어진 전통마을-대구 인흥마을 http://blog.daum.net/sunny38/11775601
영화 '황진이'를 찍은 아름다운 한옥-대구 인흥마을 광거당 http://blog.daum.net/sunny38/1177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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