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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상남도

지리산 자락에 감싸안긴 천년고찰-실상사

 

 요즘 지리산을 다닐 때는 주로 동서울 터미널에서 백무동행 버스를 이용하게 되지요.

백무동을 지나갈 때, 버스 안에서 실상사 간판을 보면서 늘 가고싶다고 소망하던 곳인데, 드뎌 실상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실상사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풍성한 들판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실상사 3층 석탑과 대웅전인 보광전의 모습

 보광전의 모습

제가 좋아라하는 단청도 하지 않으면서도 나무의 결은 살아 있는 보광전의 모습입니다.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는데 이는 천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끕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를 두들겨 치고 있다고 합니다.

 보광전의 처마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이 절은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스님이 처음 세웠다고 합니다.

신라말기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 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실상사라고 합니다.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 숙종 때 건물 36동을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하였다고 합니다.

 보광전 앞의 석등(보물 제 35호)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들어 그 시대 석등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시대 석등은 기둥이 둥근 장고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석등과 다릅니다.

지붕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원형 지붕을 얹은 점 역시 독특합니다. 받침과 기둥, 몸체 등 곳곳에 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를 새기어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온 누리에 환하게 비추려는 듯 몸체의 여덟 면 모두 큼직한 사각창을 내었다고 합니다.  

 실상사 삼층석탑(보물 제 37호)

이 쌍둥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 처음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입니다. 높이는 5.4m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입니다.

층마다 몸체와 지붕을 각각 별개의 돌로 만들고, 각종 몸체의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지붕  아래 면은 수평이나 윗면 모퉁이 부분은 위로 치켜올려졌습니다. 받침부가 비교적 커서 균형감은 덜하나 전체적인 모습은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서쪽 탑은 아쉽게도 꼭대기 일부를 잃어버렷으나 두 석탑 모두 윗부분이 비교적 원래대로 남아 있어 그 화려햇던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삼층석탑의 윗부분

 옛 기와탑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지어진 실상사에서 출토된 기와 등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그 과정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조선시대의 기와들을 모아 이탑을 만들었습니다. 

 극락전을 보러 가는 길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지리산 사찰 중 평지에 자리한 절은 이 곳 실상사와 단속사가 있는데 단속사는 폐허가 된채 석탑만 남겨져 있고, 이곳은 사찰로 남아 있습니다.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보물 제 39호)

이 비석은 홍척스님을 추모하여 옆의 부도탑과 함께 세운 것입니다.

증각은 홍척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칭호이며, 일명 남한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유명한 스님으로 이곳 지리산 자락에 실상사를 처음 세웠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비의 몸체는 없어지고 비 머리와 받침돌만 남아 있습니다.

받침돌에는 용머리 모양으로 표현하던 일반적인 추세와는 달리 거북머리를 그대로 조각하였습니다.

비의 장식이 전체적으로 광장되지않고 사실적이어서 우리나라 고전 비석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줍니다.

  실상사 극락전

이 건물은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원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려 조선 숙종 때 다시 지었습니다.

그러나 고종 때 함양 출신 양재목과 산청출신 민동혁이 절터를 가로채고자 건물을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후에 지금의 건물로 복구하였다고 합니다.

건물 정면에는 정(井)자 문살로 짠 문짝과 빗살로 짠 문짝을 번갈아 달아 다채로움을 더하였습니다.

둥근 기둥은 위아래 굵기의 변화가 없고, 천장은 바둑판 모양으로 짜 넣었습니다.

 실상사 입구에 세워진 기념물

어쩐지 어울리지 않은 듯도 하지만...

 원색의 색감과 거친 글씨가 어울린 듯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함양 여행기입니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개평리 한옥마을, 벽송사, 서암정사, 실상사, 오도재 그리고 삼봉산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용추사와 용추폭포, 화림풍류로 일컬어지는 농월정, 경모정이 있으며

또한 상림을 빼놓을 수 는 없겠네요.

함양..

숲과 산이 아름다운 고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