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에 오르는 길... 일주문을 지나치면 왼쪽에 수덕여관이 보입니다. 오래 전의 수덕여관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가 있어, 오래되고, 낡은 여관을 생각했는데...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은 이응로 화백이 이 여관을 구입하기 전, 3년 정도 머물다 간 곳이기도 합니다.
수덕여관의 전경.
집은 사람이 살아야 집도 함께 산다고 하지요. 이곳은 이응로 화백이 돌아가신 후 화백의 부인 박귀휘 여사가 2002년 세상을 떠난 후 방치돼 오다가, 수덕사에서 이곳을 사들여 새로이 정비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수덕여관 현판.
입구를 들어서면 정갈한 마루와 창호지를 바른 문이 보입니다.
군불 뜨근뜨근하게 땐 아랫목에 발을 넣고 앉아 눈오는 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순간 듭니다.
열려 있는 방을 들어가 봅니다. 다탁에 찻잔과 다기들이 놓여 있어, 어서와 앉으라고 손짓 하는 듯 합니다.
방안에서 바라보는 창호에는 지난 겨울 예쁘게 물들었던 단풍잎이 수줍은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창호에 고운 은행잎, 단풍잎 붙여 놓고선, 찬바람 소리 웅웅거리는 겨울에도 가을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건 한국 창호의 멋이 아닐련지요..
방안에는 예담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수덕사의 풍경들...
나혜석(1896-1946년) 화백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지요.
1934년 이혼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수덕사에서 수행 중이던 친구 일엽 스님(1896~1971년)을 찾아 이곳으로 오게 되지요.
나혜석은 당시 수덕사 조실 만공스님에게 출가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스님은 "임자는 중 노릇할 사람이 아니야"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에 나혜석은 여관에 정착,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예술인들을 만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3년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덕여관은 'ㄷ'자형 초가집입니다
수덕여관의 굴뚝
여관의 초가지붕
초가지붕을 이렇게 엮어놓나봅니다.
이제 이응로 화백(1904-1989년)의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이응로 화백은 본 부인 박귀희를 두고 젊은 후배화가와 파리로 유학을 떠나
게 됩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응로 화백은 65세가 되던해인 1969년에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2년간교도소 수감생활 하게 되었지요. 그때 부인 박귀희씨는 감옥에서 고생하는 남편의 모든 뒷 바라지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이응로 화백이 1969년 동백림 사건 당시 귀국하여 이곳에서 잠시 거쳐하면서 화강암 바위에 온갖 사물과 현상의 성(盛)함과 쇠퇴함을 추상화로 표현한 작품인 추상문자 암각화입니다.
이응로 화백이 머물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의 우물이 뒤편에 남아 있습니다.
수덕여관을 보고 나오는 길..
어느 집 처마 아래 곶감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찬바람 맞고, 눈 맞으며..
감은 제 안으로 더욱 단단해져가겠지요.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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