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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월출산 자락의 소박한 절집-무위사

 2008년 4월 26일, 해남 미황사에서 모임이 있어 가는 길에 무위사를 들릅니다. 월출산 산행에서도 생각만하고 지나쳤던 무위사를 갑자기 들르게 되었네요.

소박한 멋이 돋보이는 무위사 극락보전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보존각에서 보관하고 있다합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고 하네요.

 무위사의 천왕문

 일주문을 들어서니 둥글게 줄지어 선 연등이 저를 맞이합니다.

 선각대사 편광탑비

이 비는 선각대사를 기리기 위해 고려 정종 원년(946)에 세운 것으로 대사는 통일신라 말의 명승으로 법명은 형미, 속세의 성은 최씨라고 합니다.

형미는 무위갑사(현재의 무위사) 주지로 8년간 머물렀으며 어려울 때 왕건을 도와준 바 있다.

비는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입니다. 받침돌의 몸음 거북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으로 사실성 있게 표현 되었습니다. 몸돌에는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해서로 썼다는 내용과 선각대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머릿돌에는 구름속 용의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상세계로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합니다.

                                                

 무위사의 동백나무

빨갛게 떨어진 동백이  아까워서 차마 밟고 올라갈 수가 없었지요.

 절집 한켠에 핀 앵초

 천불전

 천불전에서 바라본 무위사 풍경

                                                

                                                  종각

 돌담에는 유채꽃, 절집은 꽃에 가려서 보일 듯 말 듯...

 

 

유홍준님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보면

남한땅의 5대 명찰이 있습니다.

 

서산 개심사, 부안 내소사, 청도 운문사, 영주 부석사 그리고 이곳 강진 무위사..

 

한여름 온 식구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잠 자던 어린애가 잠에서 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

이라고 표현했던 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