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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시가 있는 풍경-능소화 골목

 

 

능소화 골목/차꽃 곽성숙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얼굴을 가만히 쓸어주는 기척에 설풋 깨어나는 것이 좋아

엄마가 나가는 문소리가 싫어

옷자락을 붙잡고 아프다고 할까

그러다 뿌연 창문을 보았단다

 

눈이 내리는 것일까

짙은 는개비 일거야

해 뜨기 전 항상 엄마는 집을 나섰단다

날마다 한결같이 그랬어

차가운 철대문을 열고 어시장으로 향한

순간부터 엄마의 하루는 길고도 고단했어

 

돌담 골목에는 여름내 피었던 능소화의

굵은 뿌리들이 돌에 박혀 안심하고 있었어

가로등에 다시 불이 켜지고도 한참 후, 

비릿한 바다를 품고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은 아직 멀었단다

돌에 가지들이 박힌 능소화가 엄마를 반겨주려고 기다리니 얼마나 다행이야

골목을 들어서면 손길로 그들을 쓰다듬는 엄마를 그들이 좋아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철대문 소리에나 겨우, 

엄마다 소리치는 나는 귀가 멀었어

"기다림이 길어지면 눈도 귀도 아득해진다"

외할매가 자주 그랬어

 

비릿한 바다가 철대문으로 밀려오고

나는 흠뻑 바다를 품에 안고 골목 입구 팽나무에게 웃음을 보냈단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눈도 귀도 아득해진다"

이 구절에 멈춰서서 

후아~ 소리를 내봅니다.

 

 

 

 

 

 

 

어둠이 물러서지 않은 새벽, 

어두운 돌담길을 걷는 이가 있습니다. 

 

 

 

 

 

 

새벽녘 어시장을 나가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걷고 있는지도... 

 

 

 

 

 

 

 

 

마을 입구의 팽나무 뒤로

아침이 시작됩니다. 

 

시가 있는 풍경, 

능소화 골목.. 

장흥 바닷가 시골마을입니다.(2024년 12월 15일)